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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안 작은사진관/문화유산'에 해당되는 글 253건

  1. 2019.04.11 전북 김제 모악산 귀신사
  2. 2019.04.10 전북 김제 모악산 금산사
  3. 2019.04.06 국보 제289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4. 2019.04.04 보물 제1371호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
  5. 2019.04.03 마이산 탑사
  6. 2019.04.02 문화재자료 제122호 금당사석탑
  7. 2019.04.01 시도유형문화재 제10호 운산리삼층석탑
  8. 2019.03.31 시도유형문화재 제72호 회사동석탑
  9. 2019.03.30 문화재자료 제59호 청주 백족사 삼층석탑
  10. 2019.03.28 보물 제511호 청주 계산리 오층석탑

전북 김제 모악산 귀신사

전북 김제 모악산 귀신사

 

 

 

- 보물 제826호 김제 귀신사 대적광전 (金堤 歸信寺 大寂光殿) -

 

귀신사(歸信寺)는 신라 문무왕 16년(678) 의상대사가 세운 절로 8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전한다.

이 절에는 예스러운 맛이 배어 있는 건물과 연꽃무늬로 된 받침대, 동물 모양의 돌 등 많은 석물들을 볼 수 있다.

지혜의 빛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은 17세기 경에 다시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앞면 3칸 문에는 빗살무늬 창호를 달았고, 오른쪽과 왼쪽 끝칸인 퇴칸은 벽으로 만든 점이 특이하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62호 귀신사석탑 (歸信寺石塔) -

 

귀신사는 통일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절안에 이 3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바닥돌 위에 여러 장의 돌을 짜맞추어 기단(基壇)을 만들고 그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탑신의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선명하게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처마가 거의 평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얇고 넓은 지붕돌의 곡선미와 여러 개의 돌을 짜맞추어 조성된 수법 등으로 보아 백제 석탑 양식을 이어받은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64호 귀신사석수 (歸信寺石獸) -

 

귀신사 3층 석탑 앞쪽에 놓여 있는 것으로, 웅크리고 있는 사자상 등 위로 남근석(남성의 생식기 모양으로 다듬은 돌)이 놓여 있다.

사자상은 머리를 치켜들고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남근석은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랫부분은 대나무에서와 같은 옅은 마디를 두었다.

사찰 내에서 이러한 조각상을 찾아보기란 매우 드문 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두가지의 설이 제기되고 있다.

하나는 풍수지리상으로 이 터가 좋은 형상이 아니어서 이를 누르기 위해 세웠을 것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원래 남근석을 두는 사찰은 백제 왕실의 내원사찰(內願寺刹)뿐이므로, 이로 보아 이 절은 백제 때의 사찰일 것이라는 설이 그것이다.

만든 시기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과 사실적인 조각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다.

(문화재청)

 

 

전북 김제 모악산 귀신사

2010. 08.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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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김제 모악산 금산사

전북 김제 모악산 금산사

 

 

 

- 보물 제28호 김제 금산사 당간지주 (金堤 金山寺 幢竿支柱) -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금산사 경내에 있는 이 당간지주는 높이 3.5m로 양쪽 지주가 남북으로 마주보고 서 있다.

지주의 기단은 한 층인데, 잘 다듬은 6장의 길쭉한 돌로 바닥을 두고, 그 위를 두 장의 돌을 붙여서 마무리했다.

기단 위로는 당간을 세우는 받침을 지주 사이에 둥근 형태로 조각하였고, 받침 주변에는 괴임을 새겨두었을 뿐 별다른 꾸밈은 없다.

양쪽 지주의 안쪽 면에는 아무런 조각도 없는 반면에, 바깥면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세로띠를 돋을새김하였다.

지주의 꼭대기부분은 안쪽 면에서 바깥쪽 면으로 떨어지는 선을 둥글게 깎았다.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은 각각 지주의 위·중간·아래의 3곳에 뚫었다.

이처럼 구멍을 3곳에 두는 것은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적 특징으로, 경주 보문사지 당간지주(보물 제123호),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보물 제236호)에서도 볼 수 있다.

기단부와 당간받침을 완전하게 갖추고 있는 작품으로, 지주의 면에 새겨진 조각수법이 훌륭하다.

우리나라 당간지주 중에서도 가장 완성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8세기 후반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 보물 제828호 김제 금산사 석등 (金堤 金山寺 石燈) -

 

김제 금산사 대장전 앞뜰에 놓여 있는 8각 석등으로, 불을 밝히는 부분인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그 밑에 아래받침돌, 가운데기둥, 윗받침돌로 3단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어 놓았는데, 꼭대기의 머리장식까지 모두 온전히 남아 있다.

아래받침돌은 둥근 평면 위에 여덟 장의 연꽃잎을 새겼고, 그 위의 세워진 가운데기둥은 위는 좁고 아래가 넓은 모양이다.

윗받침돌은 아래받침돌보다 크고 무거운데, 역시 둥근 평면 위에 여덟 장의 연꽃잎을 조각하였다.

화사석은 네 면에 창을 만들어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하였다.

창 주위에는 구멍이 3개씩 뚫려있는데, 창문을 달기 위한 구멍이었던 듯하다.

지붕돌은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작은 꽃조각으로 꾸며 놓았다.

전체적으로 단순함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데, 지붕돌의 꽃조각이나 석등 각 부분의 조각수법 등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

 

 

 

- 국보 제62호 김제 금산사 미륵전 (金堤 金山寺 彌勒殿) -

 

모악산에 자리한 금산사는 백제 법왕 2년(600)에 지은 절로 신라 혜공왕 2년(766)에 진표율사가 다시 지었다.

미륵전은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조선 인조 13년(1635)에 다시 지은 뒤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거대한 미륵존불을 모신 법당으로 용화전·산호전·장륙전이라고도 한다.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1층과 2층은 앞면 5칸·옆면 4칸이고, 3층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지붕 네 모서리 끝에는 층마다 모두 얇은 기둥(활주)이 지붕 무게를 받치고 있다.

건물 안쪽은 3층 전체가 하나로 터진 통층이며, 제일 높은 기둥을 하나의 통나무가 아닌 몇 개를 이어서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웅대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문화재청)

 

 

 

 

 

 

 

 

 

 

 

- 보물 제27호김제 금산사 육각 다층석탑 (金堤 金山寺 六角 多層石塔) -

 

금산사 소속의 봉천원(奉天院)에 있던 것을 현재 자리인 대적광전 앞의 왼쪽으로 옮겨 왔다.

우리나라의 탑이 대부분 밝은 회색의 화강암으로 만든 정사각형의 탑인데 비해, 이 탑은 흑백의 점판암으로 만든 육각다층석탑이다.

탑을 받치는 기단(基壇)에는 연꽃조각을 아래위로 장식하였다.

탑신부(塔身部)는 각 층마다 몸돌이 있었으나 지금은 가장 위의 2개 층에만 남아 있다.

몸돌은 각 귀퉁이마다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고, 각 면에는 원을 그린 후 그 안에 좌불상(坐佛像)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낙수면에서 아주 느린 경사를 보이다가, 아래의 각 귀퉁이에서 우아하게 들려있다.

밑면에는 받침을 두었는데, 그 중심에 용과 풀꽃무늬를 새겨놓았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남은 것이 없었으나, 훗날 보충한 화강암으로 만든 장식이 놓여 있다.

벼루를 만드는데 주로 쓰이는 점판암을 사용하여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각 층의 줄어드는 정도가 온화하고 섬세하다.

몸돌과 지붕돌에 새겨진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진 탑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

 

 

 

- 보물 제23호김제 금산사 석련대 (金堤 金山寺 石蓮臺) -

 

석련대는 석조연화대좌의 준말로 불상을 올려놓는 돌로 만든 받침대이다.

연화대좌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이것은 형태가 희귀하고 크기도 매우 거대하다.

금산사 대적광전에서 동남쪽으로 10m쯤 되는 돌단 밑에 있는데, 이곳이 원래 위치인지는 알 수 없다.

한 돌로 조각한 것이지만 여러 개의 돌을 사용한 것처럼 상·중·하의 구성이 정연하다.

상대는 윗면이 평평하며 중앙에 불상의 양발을 세워 놓았던 것으로 보이는 네모난 구멍이 두 개 있다.

밑면에는 윗면을 떠받치는 연꽃이 에워싸고 있으며, 꽃잎 사이에도 작은 잎들이 틈틈이 새겨져 있어 더욱 화려하다.

중대는 육각형으로 꽃무늬를 돋을새김하였다.

하대는 엎어놓은 연꽃모양이 출렁이는 물결무늬처럼 전면을 채우고 있다.

이 작품은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사치스러운 조각 및 장식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

 

 

 

- 보물 제827호 김제 금산사 대장전 (金堤 金山寺 大藏殿) -

 

금산사는『 금산사사적』에 따르면 백제 법왕(600)때 세운 절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원래 미륵전 뜰 가운데 세운 목조탑으로 불경을 보관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예전의 기능은 없어지고 안에 불상을 모시고 있다.

조선 인조 13년(1635)에 다시 짓고, 1922년에 지금 있는 위치로 옮겼다.

지붕 위에 남아 있는 조각들은 목조탑이었을 때 흔적이며 건물 안에는 석가모니와 가섭, 아난의 제자상을 모시고 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기둥 윗부분에 장식하여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양쪽 칸에는 1개, 가운데 칸에는 공포를 2개씩 올렸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민 우물천장이고 석가모니가 앉아 있는 수미단에는 정교한 장식문을 조각해 놓았다.

전체 건물 구조와 크기가 비교적 간단하고 작지만 큰 관심을 끄는 변형 건물로, 탑 형식의 목조 건축물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문화재이다.

(문화재청)

 

 

 

 

- 보물 제22호 김제 금산사 노주 (金堤 金山寺 露柱) -

 

『금산사사적』에 의하면, 금산사는 600년대 창건되어 신라 혜공왕 2년(776)에 진표율사가 다시 고쳐 세우면서 큰 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고려 전기인 935년에 후백제의 신검이 아버지인 견훤을 유폐시켰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 노주는 금산사 대적광전에서 서남쪽에 위치한 대장각으로 가는 길의 중간에 있는데, 그 이름을 노주(露柱)라고는 하였으나 실제로 무엇으로 사용한 것인지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보기 드문 유물이다.

꼭대기에 놓인 꽃봉오리모양의 조각만 없으면 불상을 얹는 사각형의 대좌(臺座)처럼 보인다.

땅 위에 바닥돌을 놓고, 그 위에 아래·중간·위받침돌을 순서대로 얹어놓았다.

아래받침돌에는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 면을 둘로 나눈 뒤 안상(眼象)을 조각하였다.

아래받침돌 윗면과 윗받침돌에는 아무런 꾸밈이 없는 중간받침돌을 사이에 두고 대칭되게 연꽃잎을 새겼는데, 아래받침돌의 연꽃잎이 넓고 짧은 반면, 윗받침돌의 연꽃잎은 좁고 길쭉하게 표현하였다.

꼭대기에는 석탑과 같은 머리장식이 남아있는데, 둥근 받침부분과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가늘고 긴 사잇기둥이 연결하는 형식이다.

절이 창건된 때가 통일신라시대라고는 하지만, 당간지주 외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되는 것이 거의 없다.

이 노주도 받침돌에 새겨진 조각의 양식이나 각 부분의 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 보물 제26호 김제 금산사 금강계단 (金堤 金山寺 金剛戒壇) -

 

모악산에 자리한 금산사는 백제 법왕 2년(600)에 창건된 절로, 통일신라 경덕왕 때 진표가 두 번째로 확장하여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금산사 경내의 송대(松臺)에 5층석탑과 나란히 위치한 이 석종은 종 모양의 석탑이다.

매우 넓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사각형의 돌이 놓이고, 그 위에 탑이 세워졌다.

석종형 탑은 인도의 불탑에서 유래한 것으로 통일신라 후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외형이 범종과 비슷해서 석종으로 불린다.

기단의 각 면에는 불상과 수호신인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새겨져 있다.

특히 아래 기단 네 면에는 인물상이 새겨진 돌기둥이 남아 돌난간이 있었던 자리임을 추측하게 한다.

난간 네 귀퉁이마다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다.

탑신(塔身)을 받치고 있는 넓적한 돌 네 귀에는 사자머리를 새기고 중앙에는 연꽃무늬를 둘렀다.

판석 위에는 종 모양의 탑신이 서 있다.

꼭대기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머리를 밖으로 향한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고 그 위로 연꽃 모양을 새긴 2매의 돌과 둥근 석재를 올려 장식하였다.

기단에 조각을 둔 점과 돌난간을 두르고 사천왕상을 배치한 점 등으로 미루어 불사리를 모신 사리계단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탑은 가장 오래된 석종으로 조형이 단정하고 조각이 화려한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 보물 제25호 김제 금산사 오층석탑 (金堤 金山寺 五層石塔) -

 

금산사 안의 북쪽에 송대(松臺)라고 불리는 높은 받침 위에 세워져 있는 탑이다.

바로 뒤에는 석종모양의 사리계단이 있는데, 이렇듯 사리계단 앞에 석탑을 세워놓은 것은 사리를 섬기던 당시 신앙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상·하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의 탑이다.

기단부는 아래층 기단의 규모가 좁아져 있고, 각 기단의 윗면에 다른 돌을 끼워서 윗돌을 받치도록 하고 있어 주목된다.

탑신부는 2층 이상에서 줄어드는 비율이 제법 부드럽고, 각 층의 몸돌에 새겨진 기둥조각이 넓은 편이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처마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6번째 층은 다른 층처럼 몸돌의 각 귀퉁이에 기둥이 새겨져 있고, 지붕돌 모양의 것이 덮여 있으나, 이것은 탑의 머리장식을 받치기 위한 노반(露盤)으로 다른 탑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머리 장식은 온전히 유지되어 원형이 잘 남아 있다.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기본 양식을 따르면서도 기단이나 지붕돌의 모습 등에서 색다른 면을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 작품으로서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문화재청)

 

 

 

 

 

 

 

 

 

전북 김제 모악산 금산사

2010. 08.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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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289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국보 제289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益山 王宮里 五層石塔)

 

 

마한시대의 도읍지로 알려진 익산 왕궁면에서 남쪽으로 2㎞쯤 떨어진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이다.

1단의 기단(基壇)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부가 파묻혀 있던 것을 1965년 해체하여 수리하면서 원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탑의 기단은 네 모서리에 8각으로 깎은 주춧돌을 기둥삼아 놓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길고 큰 네모난 돌을 지그재그로 맞물리게 여러 층 쌓아 올려놓아 목조탑의 형식을 석탑에서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이 팔각기둥과 네모난 돌들 사이는 흙을 다져서 메웠는데 이 속에서 백제시대의 기와조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발굴 중에 기단 각 면의 가운데에 2개씩 기둥조각을 새긴 것이 드러났으며, 탑의 1층 지붕돌 가운데와 탑의 중심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1층부터 5층까지 탑신부 몸돌의 네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1층 몸돌에는 다시 면의 가운데에 2개씩 기둥 모양을 조각했다.

지붕돌은 얇고 밑은 반듯하나, 네 귀퉁이에서 가볍게 위로 치켜 올려져 있으며, 방울을 달았던 구멍이 뚫려 있다.

각 층 지붕돌의 윗면에는 몸돌을 받치기 위해 다른 돌을 끼워놓았다.

5층 지붕돌 위에는 탑머리장식이 남아있다.

지붕돌이 얇고 넓어 빗물을 받는 낙수면이 평평한 점이나, 탑신부 1층의 지붕돌이 기단보다 넓은 점 등 백제석탑의 양식을 일부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언제 제작되었는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상태였으나 1965년 보수작업 때 기단의 구성양식과 기단 안에서 찾아낸 사리장치의 양식이 밝혀지면서 그 시기가 비교적 뚜렷이 밝혀졌다.

즉, 백제의 옛 영토 안에서 고려시대까지 유행하던 백제계 석탑양식에 신라탑의 형식이 일부 어우러진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이 석탑에서 발견된 고려시대의 유물들은 국보 제123호로 일괄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최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발굴과정에서 지금의 석탑에 앞서 목탑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흔적이 이 탑 밑부분에서 발견되어 다시금 주목을 끌고 있다.

(문화재청)

 

 

 

 

 

 

 

 

국보 제289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전북 익산

2010. 08.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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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371호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

보물 제1371호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 (永同 般若寺 三層石塔)

 

 

이 탑은 반야사의 경내에 건립되어 있는데, 원래 반야사 북쪽의 석천계곡 ‘탑벌’에 있던 것을 1950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것이라 한다.

지대석 위에 1층의 기단을 이루고 그 위에 3층의 탑신(몸돌)을 올린 석탑으로 높이는 335cm이다.

토단 위에 건립되어 있는데, 지대석으로부터 마지막 층까지 대체로 완전한 편이다.

지대석은 모두 6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었다.

지대석 윗면의 네 모서리에는 합각선이 돌출되어 있으며, 중심부는 깊이 3cm정도의 홈을 파 기단면석이 꼽히도록 하였다.

기단부는 모두 4매의 석재로 구성되었는데, 각 면에는 양 우주와 탱주가 모각되었다.

갑석의 윗면은 1매의 판석으로 조성하였는데, 중앙에는 깊이 3cm정도의 홈을 파 초층탑신을 꼽도록 조성했다. 갑석의 네 모퉁이에도 합각선이 돌출되어 있다.

1층 탑신은 4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면에는 양 우주를 새겼는데, 남·북쪽 면석은 새로 끼워 넣은 것이다.

2·3층 탑신은 모두 1석으로 조성되었는데, 2층 탑신에 모각된 우주에서는 엔타시스 수법을 볼 수 있다.

3층 탑신은 현상으로 보아 새로 끼운 것으로 판단된다.

옥개석은 1층에서 3층까지 모두 1석으로 조성되어 있다.

각층 옥개석의 낙수면은 길이가 짧고 경사가 급한 편이며, 옥개석 받침은 1층 5단, 2·3층에서는 4단으로 되어 있다.

추녀는 비교적 두껍게 조성되었는데, 직선화되는 보편적인 수법과는 달리 둥글게 표현되어 전각의 반전은 예리한 편이다.

옥개석의 윗면에는 낮은 각형 1단의 받침을 조출해 탑신을 받고 있다.

정상에는 찰주공이 관통된 노반과 복발이 남아있다.

이 석탑은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초층탑신의 결구수법은 신라 석탑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며, 기단면석과 초층탑신을 꼽도록 하면에 홈을 판 점은 충청도와 전라도 일원에 건립된 백제계 석탑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은 비록 일부 새로운 부재가 보충되었지만, 양식적인 면에서 백제계와 신라계 석탑의 양식을 절충해 건립된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문화재청)

 

 

 

 

 

 

 

 

 

 

 

 

 

- 월류봉 -

 

 

 

 

보물 제1371호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

충북 영동

2010. 0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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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 탑사

마이산 탑사

 

 

 

 

 

 

 

 

 

 

 

 

 

 

 

 

 

 

마이산 탑사

전북 진안

2010. 0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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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122호 금당사석탑

문화재자료 제122호 금당사석탑 (金塘寺石塔) 

 

 

금당사 경내에 있는 탑으로, 현재 남아있는 부재들로 보아 5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단부(基壇部)는 가운데돌이 없어져 다른 돌로 대신하였으며,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올렸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 놓인 머리장식은 후에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규모가 작은 탑으로, 제작양식이나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문화재자료 제122호 금당사석탑

전북 진안

2010. 0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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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10호 운산리삼층석탑

 

시도유형문화재 제10호 운산리삼층석탑 (雲山里三層石塔) 

 

 

내후사동이라는 마을 이름이 말해주듯 옛 절터에 서 있는 탑으로, 2층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위층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씩이며,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동그란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가 왜소해 보이고, 탑신의 2층 몸돌이 1층 몸돌에 비해 급격히 줄어 들어 균형미를 잃었다.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양식상의 변화를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에 세웠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시도유형문화재 제10호 운산리삼층석탑

전북 진안

2010. 0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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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72호 회사동석탑

시도유형문화재 제72호 회사동석탑 (檜寺洞石塔)

 

 

 

절터로 보이는 밭가운데 서 있는 탑으로 2층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탑신의 1층 몸돌을 괴는 곳에 굵은 2단의 괴임을 두어 윗돌을 받치고 있다.

탑신의 1층 몸돌 모서리에는 희미한 기둥 모양의 조각이 보인다.

지붕돌은 각 층 모두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는데, 1층 지붕돌이 약간 파손되긴 하였으나 중후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이 든다.

꼭대기에는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 장식)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으나 이것 역시 뒤에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기단부가 왜소하고 간략화되어 안정감을 잃었으나 140㎝라는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탑신부가 고르고 건실하다.

통일신라의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위로 탑신을 받치는 굵은 괴임을 둔 점, 지붕돌 밑면받침이 3단으로 줄어든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시도유형문화재 제72호 회사동석탑

전북 진안

2010. 0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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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59호 청주 백족사 삼층석탑

문화재자료 제59호 청주 백족사 삼층석탑 (淸原 白足寺 三層石塔)

 

 

 

백족사는 가덕면 백족산(白足山 412m) 중턱 남쪽 기슭에 있는 사찰로 석탑은 대웅전과 삼성각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창건시기나 연혁을 알려주는 문헌기록은 없으나 사찰경내에 고려시대 석탑이 있고 주변에 맷돌 하대석을 비롯한

古石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이 石塔은 지대석으로 판단되는 판석 위에 탑신형의 中臺石과 甲石으로 이루어졌고, 初層塔身은 시멘트로 보강하였으며,

1층 屋蓋石 이상은 원래의 부재가 남아 있다.

屋蓋石에는 隅柱가 모각되어 있고 屋蓋石에는 4단의 層級 받침과 낙수홈이 조각되었으며, 낙수면은 경사가 완만한 편이다.

3층 屋蓋石은 파손이 매우 심하여 처마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상륜부는 모두 결실되어 복원할 때 覆鉢 등의 장식물을 모조하여 올려 놓았다.

각층의 屋蓋石에는 隅柱가 모각되었을 뿐 다른 紋樣彫飾은 없고 屋蓋石은 하면에 4단의 層級과 낙수홈이 마련되어 있으며,

轉角이 경쾌하게 살짝 反轉되어 원래의 균형비가 뛰어난 아담한 석탑이었을 것이다.

이 석탑은 造成樣式 특히 屋蓋石의 처마나 隅柱의 反轉과 4단의 層級 받침에서 屋蓋石 괴임 등과

屋身石의 略化된 양식 및 주변 지표에서 散見되는 土器片과 瓦片을 종합하여 고려시대 조성으로 추정된다.

석탑의 크기는 전체높이 200cm, 初層屋身 높이 31cm, 폭41.5cm이다.

전체적으로 균형미가 있고 짜임새가 있는 아담한 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각층 옥개석이 단아하고 널찍한 갑석과 전각의 반전이 부드럽고 낙수면이 평박한 점은 고려시대 특징을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 석불로 추정되며 학술상 가치가 크다고 판단된다.

(문화재청)

 

 

 

 

 

 

 

 

 

 

 

 

 

 

 

 

 

 

문화재자료 제59호 청주 백족사 삼층석탑

2010.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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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511호 청주 계산리 오층석탑

보물 제511호 청주 계산리 오층석탑 (淸州 桂山里 五層石塔) 

 

 

계산리의 말미장터 남쪽 언덕의 밭 가운데에 서 있는 탑으로, 1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基壇)은 가운데돌이 서로 엇갈려 짜였으며 아무런 조각이 없다.

탑신(塔身)은 1층과 3층의 몸돌은 4장의 돌로 구성하였으며, 2층과 4·5층의 몸돌은 하나의 돌로 구성하였다.

지붕돌은 1·2층이 2장의 돌로 이루어져 있고, 3층 이상은 한 돌이다.

지붕돌 아래받침은 1·2층이 5단, 3·4층이 4단, 5층은 3단으로 줄어들었다.

지붕돌의 윗면(낙수면)은 경사가 심하며, 지붕돌 아래의 받침은 처마끝까지 나와 있어 둔중한 느낌이 들지만

전체적으로는 균형이 잡히고 안정감이 있다.

이 탑은 고려 중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위아래 지붕돌의 체감률이 정연하여 전체적인 안정감이 느껴지는 우수한 작품이다.

(문화재청)

 

 

 

 

 

 

 

 

 

 

 

 

 

 

 

보물 제511호 청주 계산리 오층석탑

2010.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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