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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9.03.27 충남 천안 광덕산 광덕사
  2. 2019.03.24 전북 익산 미륵산 심곡사
  3. 2019.02.07 충남 서산 상왕산 일락사
  4. 2019.02.06 충남 예산 덕숭산 수덕사
  5. 2019.01.21 충남 공주 계룡산 신원사
  6. 2019.01.14 충남 공주 계룡산 갑사

충남 천안 광덕산 광덕사

충남 천안 광덕산 광덕사

 

- 천연기념물 제398호천안 광덕사 호두나무 (天安 廣德寺 호두나무) -

 

호도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이며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 이남 지역에 주로 분포하며, 약 20m까지 자란다.

꽃은 4∼5월에 피고, 9월에 둥근 열매가 익는다.

이 호도나무는 나이가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8.2m이며,

지상 60㎝의 높이에서 두 개 줄기로 갈라져 가슴높이의 둘레가 각각 2.62m, 2.50m이다.

호도나무 3m 앞에는 이 나무의 전설과 관련된 ‘유청신 선생 호도나무 시식지’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약 700년 전인 고려 충렬왕 16년(1290) 9월에 영밀공 유청신 선생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임금의 수레를 모시고 돌아올 때 호도나무의 어린 나무와 열매를 가져와 어린 나무는 광덕사 안에 심고,

열매는 유청신 선생의 고향집 뜰 앞에 심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의 나무가 그 때 심은 것인지의 정확한 근거자료는

찾지 못하고 있다.

이곳 마을에서는 이것이 우리나라에 호도가 전래된 시초가 되었다 하여 이곳을 호도나무 시배지(처음 심은 곳)라 부르고 있다.

이 호도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서 문화적·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120호광덕사삼층석탑 (廣德寺三層石塔) -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의 석탑이다.

위층 기단과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고, 특히 탑신의 1층 몸돌에는 문모양 안에 자물쇠를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윗면에는 급한 경사가 흐르고, 네 귀퉁이는 위로 치켜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 : 엎어놓은 그릇 모양)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아래층 기단의 기둥 장식이 생략되고,

지붕돌 받침이 4단으로 줄어드는 점 등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 문화재자료 제246호광덕사 대웅전 (廣德寺 大雄殿) -

 

광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자장율사가 지었고 흥덕왕 때 진산조사가 다시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리기 전에는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에서 가장 큰 절 중 하나였다고 한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1983년에 완전히 해체하여 복원하였는데 처음보다 크게 세웠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에는 석가여래와 그의 제자인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불상을 모시고 있으며,

불상 뒤쪽에 영조 17년(1741)에 제작된 탱화가 있다.

(문화재청)

 

 

 

 

충남 천안 광덕산 광덕사

2010. 07.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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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 미륵산 심곡사


전북 익산 미륵산 심곡사






- 시도유형문화재 제192호 심곡사칠층석탑 (深谷寺七層石塔) -




신라 무염대사가 처음 지었다는 심곡사의 대웅전 앞마당에 자리한 칠층석탑으로서,

원래는 심곡사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가 이곳으로 옮겨진 것이라고 한다.

1층의 받침돌 위에 7층의 지붕돌을 올리고 맨 위에는 작은 연꽃봉우리 모양의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으로 전체적으로 높다란 느낌을 준다.

바닥돌 위에 있는 받침돌에는 엎어 놓은 모습의 연꽃문양과 위를 향한 모습의 연꽃문양이 아래 위로 각각 새겨져 있다.

탑몸돌과 지붕돌이 1매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탑몸돌에는 기둥 모양이 생략되었다.

지붕돌 받침은 3개로 표현되어 있고 경사가 완만한 지붕돌의 처마끝은 모서리에 가서 살짝 들어 올려져 백제탑의 전통을 이어오는 면이 보인다.

탑의 일부가 나중에 고쳐진 흔적이 있고 받침 부분과 탑몸 부분이 서로 조화되지 못한 점이 있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볼 때

고려시대 말∼조선시대 초기 석탑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받침부분에 나타난 고려시대 탑의 양식과 지붕돌 받침에 나타난 조선시대 탑의 양식, 지붕돌의 백제탑 양식을 모두 간직하고 있어

익산 지역에서 석탑 변화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문화재청)




















- 문화재자료 제87호 심곡사대웅전 (深谷寺大雄殿) -




심곡사는 신라 무염대사가 처음 지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대웅전은 조선 순조 19년(1819)에 세웠다고 한다.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안쪽 가운데에 석가모니불을 그 좌우에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는데, 불상의 수법과 양식으로 보아 조선시대 작품으로 추정한다.

그 외에 아미타여래후불탱화 2점, 신중탱화 1점, 현왕탱화 1점, 칠성탱화 1점과 목조나한상 1구가 있다.

(문화재청)















전북 익산 미륵산 심곡사

2010. 0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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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 상왕산 일락사


충남 서산 상왕산 일락사


- 문화재자료 제193호 일락사대웅전 (日樂寺大雄殿) -


일락사는 상왕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의현선사가 세웠다.

이 절은 성종 18년(1487) 이후 여러 차례 보수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은 기록으로 미루어 일제시대 초기인 1919년에 고쳐 세운 건물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명부전’이란 현판이 달려있는 대웅전은 1993년에 건물을 해체하여 원래 자리 오른편에 세웠는데, 이전 자리에는 대적광전을 새로 지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을 한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전체적으로 조각을 가하여 단정하고 아담한 형태미를 보여 주고 있는 건물이다.

(문화재청)



- 문화재자료 제200호 일락사삼층석탑 (日樂寺三層石塔) -


일락사 대적광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있다.

위층 기단은 네 면마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고, 그 위 지붕모양의 덮개돌은 윗면에 비스듬한 경사가 있는데, 두 모서리가 크게 부서진 상태이다.

탑신부는 1층 몸돌이 아래의 기단과 거의 같은 크기이고, 2층 몸돌은 그에 비해 크게 줄어들어 있으며, 3층의 몸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3층 지붕돌 위로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낮은 받침돌이 남아있고, 그 위에는 머리장식 대신 막돌이 하나 놓여있다.

기단 일부가 부서지고 탑신의 3층 몸돌이 없어지는 등 보존상태가 좋지 않으나, 원래의 옛 모습은 단아함을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
















충남 서산 상왕산 일락사

2010. 04.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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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 덕숭산 수덕사


충남 예산 덕숭산 수덕사



- 문화재자료 제181호 수덕사칠층석탑 (修德寺七層石塔) -


이 탑은 1930년 당시 수덕사 주지이신 만공선사께서 대웅전 앞에 건립한 화강석재 7층석탑으로 기단면석 외부로 두드러지게 우주를 표현하고 있는데

면석에는 두께 10㎝ 정도의 사각 테두리가 돌려져 있다.

기단 위에 탑신부의 옥신대신 4개의 정사면채 석채를 주춧돌처럼 놓아 1층의 옥계석을 받치고 있다.

이 탑의 특징은 기단부는 없이 바로 탑신과 옥계석이 놓여 있으며 옥계석은 반전되어 있다. 현재 7층석탑은 황하루 옆으로 옮겨져 관리되고 있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103호 수덕사삼층석탑 (修德寺三層石塔) -


수덕사내의 대웅전 앞에 자리한 고려시대 3층 석탑이다.

형태는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위·아래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려있다.

꼭대기에는는 3층 지붕돌과 한 돌로 만들어진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이 있고 그 위로 보륜(寶輪:수레바퀴 모양의 머리장식)과

보개(寶蓋:덮개 모양의 머리장식)가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있다.

1·2층 지붕돌 귀퉁이 일부가 파손되었지만 전체적으로 각 부분이 균형을 이루어 안정감을 준다.

통일신라 문무왕 5년(665)에 세웠다고 전하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고,

오히려 통일신라 석탑 전성기에 비해 기단의 가운데기둥 조각의 수가 줄고, 지붕돌 받침이 4단으로 줄어들고 있어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









- 국보 제49호 예산 수덕사 대웅전 (禮山 修德寺 大雄殿) -


수덕사는 덕숭산에 자리잡고 있는 절로, 절에 남겨진 기록에는 백제 후기 숭제법사가 처음 짓고 고려 공민왕 때 나옹이 다시 고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또 다른 기록에는 백제 법왕 1년(599)에 지명법사가 짓고 원효가 다시 고쳤다고도 전한다.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

(문화재청)















충남 예산 덕숭산 수덕사

2010. 04.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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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계룡산 신원사


충남 공주 계룡산 신원사



- 시도유형문화재 제80호 신원사대웅전 (新元寺大雄殿) -


신원사는 계룡산 기슭에 있는 절로 백제 의자왕 11년(651)에 보덕이 처음 지었다고 전한다.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여러 번 다시 지어졌고, 지금의 대웅전 건물은 조선 고종 13년(1876)에 보연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처마의 끝을 살짝 올려 우아한 멋을 나타내었다.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 건물이며, 연꽃을 조각하여 장식하였고 매우 간략한 양식으로 되어있다.

내부에는 아미타여래를 주존으로 하여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불상 위에 닫집을 설치하여 장엄하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31호 신원사오층석탑 (新元寺五層石塔) -


계룡산의 산신제단(山神祭壇)인 중악단(中嶽壇) 남쪽에 서 있는 5층 석탑이다.

현재는 4층 지붕돌까지만 남아 있으나 원래는 2층 기단(基壇)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던 것으로 보인다.

아래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는데 이것은 목조건축의 기둥을 모방한 것이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고, 처마는 거의 수평이다.

석탑의 서쪽에는 배례석(拜禮石:탑 앞에 두어 예를 갖출 때 쓰는 돌)이 마련되어 있다.

중후한 느낌을 주는 석탑으로, 고려 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1975년 12월 탑의 해체·복원 공사 당시 탑신의 1층 몸돌에서 사리구와 함께 개원통보, 함원통보, 황송통보, 주둥이와 손잡이가 깨어진 자기주전자,

녹색 유리로 만든 목이 긴 병 등이 발견되었다.

(문화재청)






- 보물 제1293호 공주 계룡산 중악단 (公州 鷄龍山 中嶽壇) -


중악단은 국가에서 계룡산신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마련한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계룡산은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왔으며, 신라 때 5악의 하나로 제사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북쪽의 묘향산을 상악으로,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으로, 중앙의 계룡산을 중악으로 하여 단을 모시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 3년(1394)에 처음 제사를 지냈다고 전하며, 효종 2년(1651)에 제단이 폐지되었다.

그 후 고종 16년(1879)에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짓고 중악단이라 하였다.

구릉지에 동북·서남을 중심축으로 하여 대문간채, 중문간채, 중악단을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하고 둘레에는 담장을 둘렀다.

건물배치와 공간구성에 단묘(壇廟)건축의 격식과 기법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중악단의 현판은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1846∼1917)가 쓴 것이라고 한다.

내부 중앙 뒤쪽에 단을 마련하고, 단 위에 나무상자를 설치하여 그 안에 계룡산신의 신위와 영정을 모셔 두었다.

1.5m의 높은 돌기단 위에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조선 후기의 특징적인 수법으로 조각·장식하여 화려하고 위엄있게 하였다.

또한 각 지붕 위에는 각각 7개씩 조각상을 배치하여 궁궐의 전각이나 문루 또는 도성의 문루에서 사용하던 기법을 쓴 점도 특이하다.

조선시대 상악단과 하악단은 없어져서 그 유적 내용을 알 수 없으나,

중악단이 잘 보존되어 있어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사지냈던 유일한 유적으로 역사적 의미가 있다.

(문화재청)









충남 공주 계룡산 신원사

2009. 0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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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계룡산 갑사


충남 공주 계룡산 갑사



계룡산 갑사



- 시도유형문화재 제95호 갑사강당 (甲寺講堂) -


갑사는 계룡산 기슭에 있는 삼국시대의 사찰로, 백제시대에 아도화상이 처음 지었다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 

통일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크게 다시 지으면서 신라화엄 10찰의 하나가 되었다.

해탈문과 대웅전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강당은 승려들이 법문을 강론하던 건물로 정유재란(1597)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뒤로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의 옆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배흘림의 기둥 위에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를 짰는데,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단청은 완전히 퇴색되어 무늬의 흔적만 남아 있으며, 문짝은 많이 변형되어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절도사 홍재의가 쓴 ‘계룡갑사(鷄龍甲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전체적으로 기교를 부리지 않은 조선시대 후기의 웅장한 건축물이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105호 갑사대웅전 (甲寺大雄殿) -


갑사는 계룡산 아래에 있는 절로 백제 구이신왕 1년(420년)에 아도화상이 지었다는 설과 556년에 혜명이 지었다는 설 등이 있는데 확실하지 않다. 

679년에 의상이 수리해서 화엄종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신라 화엄 10찰의 하나가 되었다. 

859년·889년에 새로 지었으나 정유재란(1597)으로 인해 건물이 모두 불타 버린 것을 선조 37년(1604)에 다시 지었다.

갑사 대웅전은 절의 중심에 있는 법당으로 원래는 현재 대적전이 있는 근처에 있던 것으로 보이며, 다시 지을 때 이곳에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1층이며, 옆면이 사람인(人)자 모양으로 가장 단순한 맞배지붕 건물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가운데 3칸은 기둥 간격을 양 끝칸 보다 넓게 잡아 가운데는 공포를 2개씩, 끝칸에는 1개씩 배치하였다. 

내부는 우물천장으로 되어있고, 불단을 만들어 석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그 위에는 화려한 닫집을 설치하였다.

갑사 대웅전은 조선시대 중기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문화재청)







- 보물 제257호 공주 갑사 승탑 (公州 甲寺 僧塔) -


갑사 뒤편 계룡산에 쓰러져 있었던 것을 1917년 대적전 앞으로 옮겨 세웠다.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진 모습이며 3단의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지붕돌을 얹은 형태이다.

높직한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은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나뉘어지는데 특이하게도 아래층이 넓고 위층으로 갈수록 차츰 줄어든다. 

아래받침돌에는 사자·구름·용을 대담하게 조각하였으며, 거의 원에 가까운 가운데받침에는 각 귀퉁이마다 꽃 모양의 장식이 튀어나와 있고, 

그 사이에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을 새겨 놓았다. 

탑신을 받치는 두툼한 윗받침돌에는 연꽃을 둘러 새겼다.

탑 몸돌 4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을 새겨 놓았고, 다른 4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기왓골을 표현하는 등 지붕 모양을 정교하게 모방하고 있다.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으며, 후에 새로 만든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올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조각이 힘차고 웅대하나, 윗부분으로 갈수록 조각기법이 약해졌다. 

특히 지붕돌이 지나치게 작아져 전체적인 안정감과 균형을 잃고 있다. 

기단부의 조각은 고려시대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전체에 조각된 각종 무늬와 기법 등은 고려시대 승탑들 중에서도 우수작으로 손꼽을 만하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106호 갑사대적전 (甲寺大寂殿) -


갑사는 계룡산 아래에 있는 절로 백제 구이신왕 1년(420)에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설과 556년에 혜명이 지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679년에 의상이 보수하여 화엄종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신라 화엄10찰의 하나가 되었다. 

859년·889년에 새로 지었으나 정유재란(1597)으로 인해 건물이 불타 버린 것을 선조 37년(1604)에 다시 지었다.

갑사 대적전은 대적광전이라고도 하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삼신불(석가모니·아미타불·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원래의 금당지 옆에 있던 건물로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가장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가운데 칸은 공포가 2개이며, 양 끝칸은 1개의 공포로 이루어졌다. 

내부에는 불단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석가모니불 위에 천장을 한단 올림으로써 닫집의 효과를 나타내었다.

(문화재청)





- 보물 제256호 공주 갑사 철당간 (公州 甲寺 鐵幢竿) -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갑사(甲寺) 동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이 당간은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네 면에 구름무늬를 새긴 기단(基壇) 위로 철당간을 높게 세우고 양 옆에 당간지주를 세워 지탱하였다. 

당간은 24개의 철통을 연결한 것인데 원래는 28개였으나 고종 30년(1893) 벼락을 맞아 4개가 없어졌다고 한다. 

당간을 지탱하는 두 개의 지주는 동·서로 마주 서 있으며 꾸밈이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기둥머리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안쪽에 구멍을 뚫어서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있다.

기둥머리의 곡선과 기단부의 단순한 조각이 잘 어우러져 소박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통일신라 전기인 문무왕 20년(680)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고, 양식상으로 보아 통일신라 중기의 양식을 갖춘 것으로 생각된다.

(문화재청)







충남 공주 계룡산 갑사

2009. 0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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