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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에 해당되는 글 28건

  1. 2019.06.11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2호 금당사석탑
  2. 2019.04.02 문화재자료 제122호 금당사석탑
  3. 2019.03.27 충남 천안 광덕산 광덕사
  4. 2019.03.24 전북 익산 미륵산 심곡사
  5. 2019.03.08 충남 천안 성거산 만일사
  6. 2019.02.27 문화재자료 제88호 금암리오층석탑
  7. 2019.02.22 문화재자료 제327호 아인리석탑
  8. 2019.02.21 문화재자료 제326호 탑선리석탑
  9. 2019.02.20 문화재자료 제51호 옥천 죽향리사지 삼층석탑
  10. 2019.02.15 문화재자료 제129호 수암리 삼층석탑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2호 금당사석탑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2호 금당사석탑 (金塘寺石塔)

 

 

금당사 경내에 있는 탑으로, 현재 남아있는 부재들로 보아 5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단부(基壇部)는 가운데돌이 없어져 다른 돌로 대신하였으며,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올렸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 놓인 머리장식은 후에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규모가 작은 탑으로, 제작양식이나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2호 금당사석탑

2010. 0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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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122호 금당사석탑

문화재자료 제122호 금당사석탑 (金塘寺石塔) 

 

 

금당사 경내에 있는 탑으로, 현재 남아있는 부재들로 보아 5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단부(基壇部)는 가운데돌이 없어져 다른 돌로 대신하였으며,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올렸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 놓인 머리장식은 후에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규모가 작은 탑으로, 제작양식이나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문화재자료 제122호 금당사석탑

전북 진안

2010. 0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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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 광덕산 광덕사

충남 천안 광덕산 광덕사

 

- 천연기념물 제398호천안 광덕사 호두나무 (天安 廣德寺 호두나무) -

 

호도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이며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 이남 지역에 주로 분포하며, 약 20m까지 자란다.

꽃은 4∼5월에 피고, 9월에 둥근 열매가 익는다.

이 호도나무는 나이가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8.2m이며,

지상 60㎝의 높이에서 두 개 줄기로 갈라져 가슴높이의 둘레가 각각 2.62m, 2.50m이다.

호도나무 3m 앞에는 이 나무의 전설과 관련된 ‘유청신 선생 호도나무 시식지’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약 700년 전인 고려 충렬왕 16년(1290) 9월에 영밀공 유청신 선생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임금의 수레를 모시고 돌아올 때 호도나무의 어린 나무와 열매를 가져와 어린 나무는 광덕사 안에 심고,

열매는 유청신 선생의 고향집 뜰 앞에 심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의 나무가 그 때 심은 것인지의 정확한 근거자료는

찾지 못하고 있다.

이곳 마을에서는 이것이 우리나라에 호도가 전래된 시초가 되었다 하여 이곳을 호도나무 시배지(처음 심은 곳)라 부르고 있다.

이 호도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서 문화적·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120호광덕사삼층석탑 (廣德寺三層石塔) -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의 석탑이다.

위층 기단과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고, 특히 탑신의 1층 몸돌에는 문모양 안에 자물쇠를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윗면에는 급한 경사가 흐르고, 네 귀퉁이는 위로 치켜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 : 엎어놓은 그릇 모양)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아래층 기단의 기둥 장식이 생략되고,

지붕돌 받침이 4단으로 줄어드는 점 등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 문화재자료 제246호광덕사 대웅전 (廣德寺 大雄殿) -

 

광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자장율사가 지었고 흥덕왕 때 진산조사가 다시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리기 전에는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에서 가장 큰 절 중 하나였다고 한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1983년에 완전히 해체하여 복원하였는데 처음보다 크게 세웠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에는 석가여래와 그의 제자인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불상을 모시고 있으며,

불상 뒤쪽에 영조 17년(1741)에 제작된 탱화가 있다.

(문화재청)

 

 

 

 

충남 천안 광덕산 광덕사

2010. 07.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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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 미륵산 심곡사


전북 익산 미륵산 심곡사






- 시도유형문화재 제192호 심곡사칠층석탑 (深谷寺七層石塔) -




신라 무염대사가 처음 지었다는 심곡사의 대웅전 앞마당에 자리한 칠층석탑으로서,

원래는 심곡사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가 이곳으로 옮겨진 것이라고 한다.

1층의 받침돌 위에 7층의 지붕돌을 올리고 맨 위에는 작은 연꽃봉우리 모양의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으로 전체적으로 높다란 느낌을 준다.

바닥돌 위에 있는 받침돌에는 엎어 놓은 모습의 연꽃문양과 위를 향한 모습의 연꽃문양이 아래 위로 각각 새겨져 있다.

탑몸돌과 지붕돌이 1매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탑몸돌에는 기둥 모양이 생략되었다.

지붕돌 받침은 3개로 표현되어 있고 경사가 완만한 지붕돌의 처마끝은 모서리에 가서 살짝 들어 올려져 백제탑의 전통을 이어오는 면이 보인다.

탑의 일부가 나중에 고쳐진 흔적이 있고 받침 부분과 탑몸 부분이 서로 조화되지 못한 점이 있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볼 때

고려시대 말∼조선시대 초기 석탑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받침부분에 나타난 고려시대 탑의 양식과 지붕돌 받침에 나타난 조선시대 탑의 양식, 지붕돌의 백제탑 양식을 모두 간직하고 있어

익산 지역에서 석탑 변화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문화재청)




















- 문화재자료 제87호 심곡사대웅전 (深谷寺大雄殿) -




심곡사는 신라 무염대사가 처음 지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대웅전은 조선 순조 19년(1819)에 세웠다고 한다.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안쪽 가운데에 석가모니불을 그 좌우에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는데, 불상의 수법과 양식으로 보아 조선시대 작품으로 추정한다.

그 외에 아미타여래후불탱화 2점, 신중탱화 1점, 현왕탱화 1점, 칠성탱화 1점과 목조나한상 1구가 있다.

(문화재청)















전북 익산 미륵산 심곡사

2010. 0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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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 성거산 만일사


충남 천안 성거산 만일사



- 문화재자료 제250호 만일사 법당 (晩日寺 法堂) -


만일사를 세운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법당 안에 모시고 있는 동제관음보살상에 새긴 글로 보아 고려 목종 5년(1002)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 있는 법당은 1970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만일사에는 법당 외에도 법당 앞에 있는 만일사 5층석탑(문화재자료 제254호), 법당 뒤 바위에 조각된 만일사 마애불(문화재자료 제255호),

자연동굴 속 암벽에 조각된 만일사 석불좌상(문화재자료 제256호), 법당 안에 있는 만일사 금동불(문화재자료 제258호)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1982년에는 법당 앞 마당에서 삼국시대에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금동보살입상을 발견하여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문화재청)











- 문화재자료 제255호 만일사마애불 (晩日寺磨崖佛) -


충청남도 천원군 성거읍 청흥리의 만일사 법당 뒤의 자연암벽에 돋을새김한 마애여래좌상이다.

미완성의 불상이며 마멸이 심해 윤곽을 알아보기 어렵다.

머리 부분은 직사각형이고 얼굴의 윤곽은 거의 알아볼 수 없다.

양 어깨는 거의 수평으로 당당하게 보이며, 양 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하늘을 향한 자세로 앉아 있다.

불상의 앞부분과 머리 위쪽 양편에 홈이 있는 점으로 보아 보호각을 설치했던 것 같다.

(문화재청)



- 문화재자료 제254호 만일사 오층석탑 (晩日寺 五層石塔) -


만일사 영산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원래는 법당 앞에 있었으나 법당을 새로 보수하면서 이곳으로 옮겨놓았다.

널찍한 바닥돌 위로, 1층의 기단(基壇)을 쌓고, 5층의 탑신(塔身)을 차례로 올려놓은 모습으로, 

탑신부의 1층 몸돌은 옮길 때 잘못 놓았는지 거꾸로 놓여 있다.

기단은 4면마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겨놓은 후, 안상(眼象)을 얕게 새겼으며, 맨 윗돌의 밑면에 연꽃무늬를 두어 장식하였다.

탑신부의 각 몸돌은 기단에서처럼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 떠 새겼고, 특히 5층의 몸돌은 4면에 부처의 모습을 도드라지게 조각해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에 2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처마의 선은 느린 곡선을 그리고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이 남아 있다.

기단이나 지붕돌의 조각양식이나, 전체적인 구성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운 탑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










- 문화재자료 제256호 만일사 석불좌상 (晩日寺 石佛坐像) -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에 있는 만일사(晩日寺)는 고려 태조 4년(921)에 도선이 지은 사찰로, 석가모니불과 5층 석탑을 만들어 놓았다고 하나 신빙성은 없다.

높이 164㎝의 불상은 관음전 뒤편에 있는 자연동굴 속 암벽에 조각되어 있다.

머리를 잃어버려서 시멘트로 새로 만들었는데 신체에 비해 좀 크게 느껴진다.

깊게 새겨진 옷은 왼쪽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오른손은 무릎 위에 내려 땅을 향하고 왼손은 왼발 위에 올려 놓았다.

(문화재청)



충남 천안 성거산 만일사

2010. 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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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88호 금암리오층석탑


문화재자료 제88호 금암리오층석탑 (金岩里五層石塔)



금새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집터를 다지던 중 탑의 부분석재가 발견되어 복원해 놓은 것이다.

마을 이름은 ‘금사(金寺)’라는 절이름에서 따온 것이라 하며, 공사 당시 금동으로 만든 불상의 일부분이 함께 발견되어 이 일대가 절터였음을 뒷받침해준다.

탑은 동그란 판돌 위로 탑의 몸돌이 하나 놓여 있고, 그 위로 5개의 지붕돌을 차례로 쌓아 올린 모습이다.

둥근 판돌이 이 탑의 기단(基壇)역할을 하는 듯 하나, 원래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나만 남아있는 탑신의 몸돌은 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각층에 3단의 받침이 있다.

특히 5층 옥개석의 받침은 3단이긴 하지만 가장 하단은 굉장히 퇴화되어 있는 상태이다.

없어진 부분들이 많아 원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으며, 다른 탑에 비해 규모도 작고 불완전한 모습이다.

지붕돌의 밑받침을 3단으로 두거나, 3층 이상은 전혀 두지 않는 등 불규칙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 고려시대에 세운 탑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











문화재자료 제88호 금암리오층석탑

충남 부여

2010. 06.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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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327호 아인리석탑


문화재자료 제327호 아인리석탑 (衙仁里石塔)



금산읍 아인리에 위치해 있는 석탑으로, 원래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었을 것이나,

현재는 탑신의 2층 몸돌과 꼭대기의 머리장식이 없어진 상태이다.

기단은 최근에 조립된 것으로, 네 장의 판판한 돌을 세워 4면을 만들고, 판돌을 덮어 마무리하였다.

탑신의 1층 몸돌 남쪽면에는 선으로 새긴 부처 모습의 조각이 있으며,

한 돌로 이루어진 2층 지붕돌과 3층 몸돌은 그 위에 놓여 있는 3층 지붕돌의 크기가 잘 맞지 않아 불안정한 비례를 보인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층은 4단, 2·3층은 3단이며, 네 귀퉁이에서 크게 치켜올라갔다.

석탑 주변에서 고려시대의 기와가 수습되어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재자료 제327호 아인리석탑

충남 금산

2010. 06.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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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326호 탑선리석탑


문화재자료 제326호 탑선리석탑 (塔仙里石塔)




탑선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3층 석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 놓은 모습이다.

기단은 직육면체의 돌을 2단으로 짜 놓은 후 그 위로 판돌을 얹어 마무리하였고,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다른 돌로 새겨 차례대로 올려 놓았다.

탑신의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는데, 현재 1층 몸돌은 세로로 기둥 조각의 폭만큼 잘려진 채 옆으로 뉘여 있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위로 가볍게 들려 있으며, 밑면에는 3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남아있는 탑의 모습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측되며,

기단과 탑신을 이루는 돌의 재질이 서로 달라 원래는 각기 다른 탑의 일부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문화재자료 제326호 탑선리석탑

충남 금산

2010. 06.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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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51호 옥천 죽향리사지 삼층석탑


문화재자료 제51호 옥천 죽향리사지 삼층석탑 (沃川 竹香里寺址 三層石塔)



이 탑은 죽향리 탑선골의 절터에 있던 것으로, 일제강점기에 죽향초등학교 교정으로 옮겼다.

소형의 석탑이지만 단층의 기단부基壇部 위에 3층의 탑신부와 복발, 보주로 이루어진 상륜부를 갖추고 있어 거의 원래의 형태에 가깝다.

기단은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는데 건물 모퉁이에 세운 기둥인 우주隅柱와 쓰러지지 않도록 받치는 기둥인 탱주가 표현되었을 뿐 다른 장식은 없고,

기단갑석基壇甲石의 윗면에는 1단의 돌출부를 두어 탑신부를 받치도록 하였다.

1층의 몸돌에는 각 면마다 우주를 그대로 본떠 새겼으며 전면에는 문짝을 음각으로 표현하였다.

2,3층의 몸돌에는 우주가 표현되지 않았고 3층에는 신주를 모셔두는 감실龕室이 마련되었다.

탑의 형태는 전체적으로 매우 마르고 길쭉한 모습으로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크기는 전체높이 291cm, 기단 폭 92cm이다.

(문화재청)











문화재자료 제51호 옥천 죽향리사지 삼층석탑

충북 옥천

2010. 0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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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129호 수암리 삼층석탑


문화재자료 제129호 수암리삼층석탑 (水岩里三層石塔)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탑 전체를 하나의 돌로 조성한 것이 특이하다.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치켜올라갔고,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연꽃무늬를 두른 복발(覆鉢:엎어 놓은 그릇모양)을 올려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조선 후기 이 지방을 관할하던 한 좌수(座首)가 매년 풍년을 기원하고자 이 탑을 세웠다고 한다.

(문화재청)













문화재자료 제129호 수암리 삼층석탑

충남 서천

2010. 0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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