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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에 해당되는 글 49건

  1. 2019.04.11 전북 김제 모악산 귀신사
  2. 2019.04.04 보물 제1371호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
  3. 2019.03.28 보물 제511호 청주 계산리 오층석탑
  4. 2019.03.18 보물 제1527호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
  5. 2019.03.06 보물 제354호 천안 천흥사지 오층석탑
  6. 2019.02.21 충북 영동 백화산 반야사
  7. 2019.02.18 충남 논산 반야산 관촉사
  8. 2019.02.16 보물 제800호 공주 마곡사 영산전
  9. 2019.02.16 충남 부여 만수산 무량사
  10. 2019.02.13 보물 제18호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

전북 김제 모악산 귀신사

전북 김제 모악산 귀신사

 

 

 

- 보물 제826호 김제 귀신사 대적광전 (金堤 歸信寺 大寂光殿) -

 

귀신사(歸信寺)는 신라 문무왕 16년(678) 의상대사가 세운 절로 8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전한다.

이 절에는 예스러운 맛이 배어 있는 건물과 연꽃무늬로 된 받침대, 동물 모양의 돌 등 많은 석물들을 볼 수 있다.

지혜의 빛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은 17세기 경에 다시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앞면 3칸 문에는 빗살무늬 창호를 달았고, 오른쪽과 왼쪽 끝칸인 퇴칸은 벽으로 만든 점이 특이하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62호 귀신사석탑 (歸信寺石塔) -

 

귀신사는 통일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절안에 이 3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바닥돌 위에 여러 장의 돌을 짜맞추어 기단(基壇)을 만들고 그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탑신의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선명하게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처마가 거의 평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얇고 넓은 지붕돌의 곡선미와 여러 개의 돌을 짜맞추어 조성된 수법 등으로 보아 백제 석탑 양식을 이어받은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64호 귀신사석수 (歸信寺石獸) -

 

귀신사 3층 석탑 앞쪽에 놓여 있는 것으로, 웅크리고 있는 사자상 등 위로 남근석(남성의 생식기 모양으로 다듬은 돌)이 놓여 있다.

사자상은 머리를 치켜들고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남근석은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랫부분은 대나무에서와 같은 옅은 마디를 두었다.

사찰 내에서 이러한 조각상을 찾아보기란 매우 드문 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두가지의 설이 제기되고 있다.

하나는 풍수지리상으로 이 터가 좋은 형상이 아니어서 이를 누르기 위해 세웠을 것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원래 남근석을 두는 사찰은 백제 왕실의 내원사찰(內願寺刹)뿐이므로, 이로 보아 이 절은 백제 때의 사찰일 것이라는 설이 그것이다.

만든 시기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과 사실적인 조각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다.

(문화재청)

 

 

전북 김제 모악산 귀신사

2010. 08.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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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371호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

보물 제1371호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 (永同 般若寺 三層石塔)

 

 

이 탑은 반야사의 경내에 건립되어 있는데, 원래 반야사 북쪽의 석천계곡 ‘탑벌’에 있던 것을 1950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것이라 한다.

지대석 위에 1층의 기단을 이루고 그 위에 3층의 탑신(몸돌)을 올린 석탑으로 높이는 335cm이다.

토단 위에 건립되어 있는데, 지대석으로부터 마지막 층까지 대체로 완전한 편이다.

지대석은 모두 6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었다.

지대석 윗면의 네 모서리에는 합각선이 돌출되어 있으며, 중심부는 깊이 3cm정도의 홈을 파 기단면석이 꼽히도록 하였다.

기단부는 모두 4매의 석재로 구성되었는데, 각 면에는 양 우주와 탱주가 모각되었다.

갑석의 윗면은 1매의 판석으로 조성하였는데, 중앙에는 깊이 3cm정도의 홈을 파 초층탑신을 꼽도록 조성했다. 갑석의 네 모퉁이에도 합각선이 돌출되어 있다.

1층 탑신은 4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면에는 양 우주를 새겼는데, 남·북쪽 면석은 새로 끼워 넣은 것이다.

2·3층 탑신은 모두 1석으로 조성되었는데, 2층 탑신에 모각된 우주에서는 엔타시스 수법을 볼 수 있다.

3층 탑신은 현상으로 보아 새로 끼운 것으로 판단된다.

옥개석은 1층에서 3층까지 모두 1석으로 조성되어 있다.

각층 옥개석의 낙수면은 길이가 짧고 경사가 급한 편이며, 옥개석 받침은 1층 5단, 2·3층에서는 4단으로 되어 있다.

추녀는 비교적 두껍게 조성되었는데, 직선화되는 보편적인 수법과는 달리 둥글게 표현되어 전각의 반전은 예리한 편이다.

옥개석의 윗면에는 낮은 각형 1단의 받침을 조출해 탑신을 받고 있다.

정상에는 찰주공이 관통된 노반과 복발이 남아있다.

이 석탑은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초층탑신의 결구수법은 신라 석탑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며, 기단면석과 초층탑신을 꼽도록 하면에 홈을 판 점은 충청도와 전라도 일원에 건립된 백제계 석탑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은 비록 일부 새로운 부재가 보충되었지만, 양식적인 면에서 백제계와 신라계 석탑의 양식을 절충해 건립된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문화재청)

 

 

 

 

 

 

 

 

 

 

 

 

 

- 월류봉 -

 

 

 

 

보물 제1371호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

충북 영동

2010. 0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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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511호 청주 계산리 오층석탑

보물 제511호 청주 계산리 오층석탑 (淸州 桂山里 五層石塔) 

 

 

계산리의 말미장터 남쪽 언덕의 밭 가운데에 서 있는 탑으로, 1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基壇)은 가운데돌이 서로 엇갈려 짜였으며 아무런 조각이 없다.

탑신(塔身)은 1층과 3층의 몸돌은 4장의 돌로 구성하였으며, 2층과 4·5층의 몸돌은 하나의 돌로 구성하였다.

지붕돌은 1·2층이 2장의 돌로 이루어져 있고, 3층 이상은 한 돌이다.

지붕돌 아래받침은 1·2층이 5단, 3·4층이 4단, 5층은 3단으로 줄어들었다.

지붕돌의 윗면(낙수면)은 경사가 심하며, 지붕돌 아래의 받침은 처마끝까지 나와 있어 둔중한 느낌이 들지만

전체적으로는 균형이 잡히고 안정감이 있다.

이 탑은 고려 중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위아래 지붕돌의 체감률이 정연하여 전체적인 안정감이 느껴지는 우수한 작품이다.

(문화재청)

 

 

 

 

 

 

 

 

 

 

 

 

 

 

 

보물 제511호 청주 계산리 오층석탑

2010.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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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527호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


보물 제1527호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 (忠州 白雲庵 鐵造如來坐像)





충주시에 소재한 백운암은 1886년 무당의 신분으로 진령군이라는 작호를 받아 여자 대감이 된 윤씨에 의하여 창건된 사찰로 전해진다.

이 사찰에서 주존불로 봉안하고 있는 이 철불은 원래 이곳에서 전하던 불상은 아닌데,

인근에 고려시대 대규모 사지인 억정사지(億政寺址)가 있어서 아마도 이곳에서 옮겨온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충주는 철의 산지로 백운암의 철조여래좌상 이외에도 대원사(大圓寺)의 충주철불좌상(보물 제 98호)과 단호사(丹湖寺)의 철불좌상(보물 제 512호)이

전하고 있어서, 이 세 구의 철불은 충주 지방의 3대 철불로 알려져 있다.

백운암의 철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8세기 석굴암 본존상 이래로 유행한 편단우견(偏袒右肩)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여래 좌상으로,

규모는 높이 87㎝정도의 크지 않은 상이다.

얼굴은 몸 전체에 비해 작은 편이나 이목구비의 표현이 뚜렷하고 근엄한 표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보이고 어깨가 넓으며 가슴이 융기되었고,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다리의 폭이 넓어서 당당한 자세를 보인다.

몸의 표현이 전체적으로 양감있게 조각되었고 대의 자락에서 부분적으로 번파식 옷주름을 볼 수 있어서

이 불상이 통일신라 8세기 양식을 반영하고 있는 상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양감이 8세기 불상만큼 풍부한 것은 아니며 항마촉지인의 수인(手印)도 전형적인 형식이 아니어서 8세기보다는 시대가 내려가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성 시기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정도로 추정된다.

이 철조여래좌상은 비교적 통일신라 불상 양식의 특징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 충주 지역 철불 중에서는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상으로 추정된다.

또한 상호도 원만하며 전체적으로 크게 손상된 부분이 없고 조각 양식도 좋은 편으로, 통일신라시대 이래 철불 연구에 매우 중요한 상이다.

(문화재청)








보물 제1527호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

2010.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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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354호 천안 천흥사지 오층석탑


보물 제354호 천안 천흥사지 오층석탑 (天安 天興寺址 五層石塔)




천흥사터에 서 있는 고려시대의 탑이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거대한 모습으로, 고려왕조 시작 직후 석탑의 규모가 다시 커지던 당시의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

탑신을 받치고 있는 기단은 아래층이 너무 얕아 마치 1층으로 된 듯 하다.

아래층 기단의 4면에는 각 면마다 7개씩의 안상(眼象)이 촘촘히 조각되어 있다.

위층 기단의 4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겼다.

몸돌은 4면의 모서리에만 기둥 모양을 뚜렷하게 새겨놓았고,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줄어드는 비율이 비교적 완만하다.

지붕돌은 얇고 너비가 좁으며, 밑받침이 3단으로 매우 얕게 조각되었다.

경사면은 가파르다가 이내 수평을 이루고 있어 그 반전감이 크고, 네 귀퉁이에서의 들림은 날아갈 듯 가뿐하다.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돌의 구성에도 규율성이 있다.

특히 탑신에서 보이는 완만한 체감율은 온화하고 장중한 느낌을 더해준다.

절터에는 탑 외에도 천안 천흥사지 당간지주(보물 제99호)가 남아 있으며, 동종(銅鍾)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동종은 남겨진 기록에 의해 고려 현종 원년(1010)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 탑 역시 이와 시대를 같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보물 제354호 천안 천흥사지 오층석탑

2010. 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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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 백화산 반야사


충북 영동 백화산 반야사



- 보물 제1371호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 (永同 般若寺 三層石塔) -


이 탑은 반야사의 경내에 건립되어 있는데, 원래 반야사 북쪽의 석천계곡 ‘탑벌’에 있던 것을 1950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것이라 한다.

지대석 위에 1층의 기단을 이루고 그 위에 3층의 탑신(몸돌)을 올린 석탑으로 높이는 335cm이다.

토단 위에 건립되어 있는데, 지대석으로부터 마지막 층까지 대체로 완전한 편이다.

지대석은 모두 6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었다.

지대석 윗면의 네 모서리에는 합각선이 돌출되어 있으며, 중심부는 깊이 3cm정도의 홈을 파 기단면석이 꼽히도록 하였다.

기단부는 모두 4매의 석재로 구성되었는데, 각 면에는 양 우주와 탱주가 모각되었다.

갑석의 윗면은 1매의 판석으로 조성하였는데, 중앙에는 깊이 3cm정도의 홈을 파 초층탑신을 꼽도록 조성했다.

갑석의 네 모퉁이에도 합각선이 돌출되어 있다.

1층 탑신은 4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면에는 양 우주를 새겼는데, 남·북쪽 면석은 새로 끼워 넣은 것이다.

2·3층 탑신은 모두 1석으로 조성되었는데, 2층 탑신에 모각된 우주에서는 엔타시스 수법을 볼 수 있다.

3층 탑신은 현상으로 보아 새로 끼운 것으로 판단된다.

옥개석은 1층에서 3층까지 모두 1석으로 조성되어 있다.

각층 옥개석의 낙수면은 길이가 짧고 경사가 급한 편이며, 옥개석 받침은 1층 5단, 2·3층에서는 4단으로 되어 있다.

추녀는 비교적 두껍게 조성되었는데, 직선화되는 보편적인 수법과는 달리 둥글게 표현되어 전각의 반전은 예리한 편이다.

옥개석의 윗면에는 낮은 각형 1단의 받침을 조출해 탑신을 받고 있다.

정상에는 찰주공이 관통된 노반과 복발이 남아있다.

이 석탑은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초층탑신의 결구수법은 신라 석탑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며,

기단면석과 초층탑신을 꼽도록 하면에 홈을 판 점은 충청도와 전라도 일원에 건립된 백제계 석탑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은 비록 일부 새로운 부재가 보충되었지만,

양식적인 면에서 백제계와 신라계 석탑의 양식을 절충해 건립된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문화재청)

















충북 영동 백화산 반야사

2010. 0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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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 반야산 관촉사


충남 논산 반야산 관촉사



- 국보 제323호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論山 灌燭寺 石造彌勒菩薩立像) -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고려 광종(光宗, 재위 949~975)의 명으로 968년경 승려 조각장 혜명(慧明)이 제작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석불로서,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18호로 지정․관리되어 오다가, 이번에 고려시대 신앙과 불교조각사에 있어서의 위상을 재평가 받아 국보로 승격하게 되었다.

(2018. 04. 20)

석불과 관련된 기록은 고려 말 승려 무외(無畏)가 쓴 「용화회소(龍華會䟽)」를 비롯해『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

고려 문인 이색(李穡, 1328~1396)의 시 등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내용을 종합해 보면 고려왕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당대 뛰어난 조각장이 참여하여

제작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보살상은 좌우로 빗은 머릿결 위로 높은 원통형 보관(寶冠)을 썼고 두 손으로 청동제 꽃을 들고 있다.

널찍하고 명료한 이목구비와 균제되지 않는 압도적인 크기 등은 한국 불상 중 가장 독창적이고 특색 있는 미의식을 창출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우아한 이상미(理想美)를 축구한 통일신라 조각과는 전혀 다른 파격적이고 대범한 미적 감각을 담고 있는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우리나라 불교신앙과 조각사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독창성과 완전성 측면에서도 뛰어나 국보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문화재청)






- 보물 제232호 논산 관촉사 석등 (論山 灌燭寺 石燈) -


관촉사 앞뜰의 큰 석불 앞에 놓여있는 4각 석등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이 중심이 되어,

아래에는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평면이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고려식으로,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 새겨진 굵직한 연꽃무늬가 두터움을 드러내고 있다.

가운데받침은 각이없는 굵고 둥그런 기둥으로 세웠는데, 위아래 양끝에는 두줄기의 띠를 두르고, 중간에는 세줄기의 띠를 둘렀다.

특히 중간의 세 줄기 중에서 가장 굵게 두른 가운데 띠에는 8송이의 꽃을 조각하여 곱게 장식하였다.

2층으로 이루어진 화사석은 1층에 4개의 기둥을 세워 지붕돌을 받치도록 하였는데, 기둥이 빈약한 반면 창은 터무니없이 널찍하다.

각 층의 지붕들은 처마가 가볍게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네 귀퉁이에는 큼직한 꽃 조각이 서 있어 부드러운 조화를 이룬다.

꼭대기는 불꽃무늬가 새겨진 큼직한 꽃봉오리모양의 장식을 두었는데, 조각이 두터워서 인지 무거워 보인다.

전체적으로 뒤에 서 있는 석불 못지않게 힘차 보이나, 화사석의 네 기둥이 가늘어 균형이 깨지고,

받침의 가운데기둥이 너무 굵고 각이 없어 그 효과가 줄어든 감이 있다.

뒤의 석불 즉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과 함께 고려 광종 19년(968)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남한에서는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다음으로 거대한 규모를 보여준다.

(문화재청)







- 관촉사 석탑 -
















충남 논산 반야산 관촉사

2010. 0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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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800호 공주 마곡사 영산전


보물 제800호 공주 마곡사 영산전 (公州 麻谷寺 靈山殿)




- 보물 제800호 공주 마곡사 영산전 (公州 麻谷寺 靈山殿) -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9년(640)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설과 신라의 승려 무선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세웠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신라말부터 고려 전기까지 폐사되었던 절로 고려 명종 2년(1172) 보조국사가 절을 다시 세웠으나 임진왜란 뒤 60년 동안 다시 폐사되었다.

훗날 조선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가 대웅전·영산전·대적광전 등을 고쳐 지었다고 한다.

영산전은 석가모니불과 일대기를 담은 팔상도를 모신 법당을 가리키는데 이 건물은 천불(千佛)을 모시고 있어 천불전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각순대사가 절을 다시 일으키면서(1651) 고쳐 지은 것으로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해탈문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앞쪽에 걸린 현판은 세조의 글씨라고 하며 안쪽은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몄다.

짜임새를 잘 갖추고 있는 조선시대의 건물로 건축 양식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







보물 제800호 공주 마곡사 영산전

충남 공주

2010. 0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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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 만수산 무량사


충남 부여 만수산 무량사









- 시도유형문화재 제57호 무량사당간지주 (無量寺幢竿支柱) -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는 이곳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걸어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의 양쪽에 서서 이를 지탱해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드물게 당간이 있으나 대부분 두 기둥만 남아 있다.

이 당간지주는 무량사 천왕문 동쪽에 남아 있는 것으로, 두 개의 길다란 돌기둥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기둥 끝은 안쪽면에서 바깥쪽으로 둥글게 다듬었고, 앞뒷면의 가장자리에는 테두리 선을 돌렸으며, 양 옆면 가운데에는 세로로 돌출된 띠를 새겼다.

마주보는 기둥의 안쪽면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2개의 구멍을 각각 뚫어 놓았다.

돌기둥 사이에는 당간 받침돌이 끼워져 있는데, 그 중앙에 당간을 받는 기둥자리를 파고 그 주위를 둥글고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아무런 장식이 없는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통일신라시대에서 굳어진 제작방식을 따라 고려 전기에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











- 보물 제185호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扶餘 無量寺 五層石塔) -


무량사 극락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웅장한 모습의 5층 석탑이다.

탑을 받치는 기단(基壇)은 1단으로, 둥글게 다듬은 두툼한 석재를 포함한 층단으로 괴임을 만들고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세웠다.

탑신(塔身)은 지붕돌과 몸돌을 한 층으로 하여 5층을 이루고 있다.

네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있는 몸돌은 지붕돌에 비하여 높이가 낮은 편이나 전체적으로 알맞은 비례를 보이고 있어 우아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붕돌은 얇고 넓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다.

지붕돌과 밑의 받침은 딴 돌로 구성되어 있고 받침의 수는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낮은 받침돌 위로 머리장식의 일부가 남아있다.

백제와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조화시켜 만든 고려 전기의 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백제의 옛 땅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백제의 기법이 이어졌고 통일신라의 시대적인 양식도 계승되었다.

해체공사를 할 때 탑신의 1층 몸돌에서 금동제 아미타여래좌상, 지장보살상, 관음보살상의 삼존상이 나왔고,

3층에서는 금동보살상, 5층에서는 사리구(舍利具)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문화재청)











- 보물 제356호 부여 무량사 극락전 (扶餘 無量寺 極樂殿) -


무량사는 신라 말에 범일이 세워 여러 차례 공사를 거쳤으나 자세한 연대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신라말 고승 무염대사가 일시 머물렀고, 고려시대에 크게 다시 지었으며, 김시습이 이 절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 건물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흔치않는 2층 불전으로 무량사의 중심 건물이다.

외관상으로는 2층이지만 내부에서는 아래·위층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트여 있다.

아래층 평면은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기둥 사이를 나누어 놓았는데 기둥은 매우 높은 것을 사용하였다.

위층은 아래층에 세운 높은기둥이 그대로 연장되어 4면의 벽면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원래는 그 얼마되지 않는 낮은 벽면에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창문을 설치했었는데 지금은 나무판 벽으로 막아놓았다.

아미타여래삼존상을 모시고 있는 이 불전은 조선 중기의 양식적 특징을 잘 나타낸 불교 건축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우수한 건물이다.

(문화재청)





- 보물 제233호 부여 무량사 석등 (扶餘 無量寺 石燈) -


무량사 법당 앞뜰에 세워져 있는 8각 석등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네모난 바닥돌 위로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아래받침돌은 연꽃 8잎이 조각되어 있고, 가운데받침은 기둥으로 길게 세워져있으며 그 위로 연꽃이 새겨진 윗받침돌이 놓여 있다.

화사석은 8면 중 4면은 넓고, 4면은 좁은 형태로, 넓은 4면에 창이 뚫려 있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의 치켜올림과 처마의 경사가 잘 어울려 경쾌한 모습을 보여 주며, 꼭대기에는 자그만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솟아 있다.

전체적으로 지붕돌이 약간 큰 감이 있으나 경쾌한 곡선으로 인해 무거움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래·위받침돌의 연꽃조각은 통일신라 전성기의 화려한 연꽃무늬와는 차이가 있고, 각 부분이 형식적으로 흐른 감이 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인 10세기경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충남 부여 만수산 무량사

2010. 0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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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8호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


보물 제18호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 (靑陽 西亭里 九層石塔)




공주에서 청양쪽으로 23㎞ 떨어진 벌판 가운데에 서 있는 탑으로,

부근에 고려시대 백곡사(白谷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주위에 기와조각 등이 흩어져 있을 뿐 다른 유물들은 찾아볼 수 없다.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9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眼象)을 돌려 새겼는데, 바닥선이 꽃모양으로 솟아올라 있어 고려시대의 양식상 특징을 드러낸다.

윗층 기단에는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그 위로 알맞은 두께의 돌을 덮어 안정된 모양새를 띠고 있다.

탑신 1층이 큰 점이 특징적인데, 2층부터는 높이가 뚜렷하게 줄어들지만 넓이는 크게 좁아지지 않아 우아한 느낌이다.

지붕돌은 아랫면에 1층은 5단, 나머지 층은 3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네 귀퉁이가 약간씩 치켜올라가 있다.

전체적으로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석탑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9층이나 되는 층수로 인해 형태가 매우 높아져 안정감이 부족하다.

각 부분의 세부적 조각양식이나 기단의 안상을 새긴 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보물 제18호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

충남 청양

2010. 05.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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