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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9.03.12 시도유형문화재 제8호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제271호 충주 창동리 석조약사여래입상
  2. 2019.03.08 충남 천안 성거산 만일사
  3. 2019.02.18 충남 논산 반야산 관촉사
  4. 2019.02.11 문화재자료 제148호 청양삼층석탑, 보물 제197호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
  5. 2019.02.08 국립 부여박물관
  6. 2019.01.30 충남 아산 영인산 관음사
  7. 2019.01.12 충남 부여 정림사지
  8. 2019.01.10 충남 논산 반야산 관촉사
  9. 2018.07.10 안성시 향토유적 제42호 삼죽기솔리국사암석조여래입상
  10. 2018.07.10 시도유형문화재 제36호 기솔리석불입상

시도유형문화재 제8호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제271호 충주 창동리 석조약사여래입상


시도유형문화재 제8호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忠州 創洞里 五層石塔), 

시도유형문화재 제271호 충주 창동리 석조약사여래입상 (忠州 倉洞里 石造藥師如來立像)






- 시도유형문화재 제8호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


중원탑평리칠층석탑(국보 제6호)에서 남쪽으로 2㎞쯤 되는 지점에 자리한 5층 석탑으로,

원래는 민가의 뒷뜰에 있던 것을 100여m 남쪽으로 옮겨 복원해 놓은 것이다.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며, 현재 맨 위의 머리장식이 없어진 채 그 받침돌만 남아 있다.

위로 오를수록 조금씩 규모가 줄어드는 탑신의 각 몸돌에는 네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지붕돌과 몸돌은 각기 다른 돌로 조성되어 있는데 5층에서만은 한 돌로 되어 있어 흥미롭다.

지붕은 네 귀퉁이가 부드럽게 치켜올라갔고, 위로 올라갈수록 밑면의 받침수가 줄어드는 특징을 보인다.

이 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단 위에 두툼한 괴임돌을 끼워 탑신의 1층 몸돌을 받치고 있는 것과 각 층 지붕돌 위에도 비슷한 괴임을 표현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장식이 거의 없는 탑신에 작은 변화를 주고 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탑은, 섬세한 조각은 볼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 구성이 간략화되고 대범하여 고려인의 기상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271호 충주 창동리 석조약사여래입상 -



화강암 판석 1매에 보주형 광배와 불신을 부조한 불상으로소발위에 두터운 육계가 표현되었으며 눈썹은 반원형이며 얼굴은 통통하게 살이 쪘다.

양귀는 어깨까지 닿으며 삼도가 표현되었다.

법의는 통견이며 왼손을 가슴에 대고 그 위에 약합을 쥐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위까지 올려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고 있다.

대좌는 장방형 판석에 연화문을 새기고 불상을 끼우도록 되어 있으나 원래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시도유형문화재 제8호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시도유형문화재 제271호 충주 창동리 석조약사여래입상

2010.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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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 성거산 만일사


충남 천안 성거산 만일사



- 문화재자료 제250호 만일사 법당 (晩日寺 法堂) -


만일사를 세운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법당 안에 모시고 있는 동제관음보살상에 새긴 글로 보아 고려 목종 5년(1002)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 있는 법당은 1970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만일사에는 법당 외에도 법당 앞에 있는 만일사 5층석탑(문화재자료 제254호), 법당 뒤 바위에 조각된 만일사 마애불(문화재자료 제255호),

자연동굴 속 암벽에 조각된 만일사 석불좌상(문화재자료 제256호), 법당 안에 있는 만일사 금동불(문화재자료 제258호)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1982년에는 법당 앞 마당에서 삼국시대에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금동보살입상을 발견하여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문화재청)











- 문화재자료 제255호 만일사마애불 (晩日寺磨崖佛) -


충청남도 천원군 성거읍 청흥리의 만일사 법당 뒤의 자연암벽에 돋을새김한 마애여래좌상이다.

미완성의 불상이며 마멸이 심해 윤곽을 알아보기 어렵다.

머리 부분은 직사각형이고 얼굴의 윤곽은 거의 알아볼 수 없다.

양 어깨는 거의 수평으로 당당하게 보이며, 양 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하늘을 향한 자세로 앉아 있다.

불상의 앞부분과 머리 위쪽 양편에 홈이 있는 점으로 보아 보호각을 설치했던 것 같다.

(문화재청)



- 문화재자료 제254호 만일사 오층석탑 (晩日寺 五層石塔) -


만일사 영산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원래는 법당 앞에 있었으나 법당을 새로 보수하면서 이곳으로 옮겨놓았다.

널찍한 바닥돌 위로, 1층의 기단(基壇)을 쌓고, 5층의 탑신(塔身)을 차례로 올려놓은 모습으로, 

탑신부의 1층 몸돌은 옮길 때 잘못 놓았는지 거꾸로 놓여 있다.

기단은 4면마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겨놓은 후, 안상(眼象)을 얕게 새겼으며, 맨 윗돌의 밑면에 연꽃무늬를 두어 장식하였다.

탑신부의 각 몸돌은 기단에서처럼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 떠 새겼고, 특히 5층의 몸돌은 4면에 부처의 모습을 도드라지게 조각해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에 2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처마의 선은 느린 곡선을 그리고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이 남아 있다.

기단이나 지붕돌의 조각양식이나, 전체적인 구성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운 탑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










- 문화재자료 제256호 만일사 석불좌상 (晩日寺 石佛坐像) -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에 있는 만일사(晩日寺)는 고려 태조 4년(921)에 도선이 지은 사찰로, 석가모니불과 5층 석탑을 만들어 놓았다고 하나 신빙성은 없다.

높이 164㎝의 불상은 관음전 뒤편에 있는 자연동굴 속 암벽에 조각되어 있다.

머리를 잃어버려서 시멘트로 새로 만들었는데 신체에 비해 좀 크게 느껴진다.

깊게 새겨진 옷은 왼쪽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오른손은 무릎 위에 내려 땅을 향하고 왼손은 왼발 위에 올려 놓았다.

(문화재청)



충남 천안 성거산 만일사

2010. 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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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 반야산 관촉사


충남 논산 반야산 관촉사



- 국보 제323호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論山 灌燭寺 石造彌勒菩薩立像) -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고려 광종(光宗, 재위 949~975)의 명으로 968년경 승려 조각장 혜명(慧明)이 제작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석불로서,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18호로 지정․관리되어 오다가, 이번에 고려시대 신앙과 불교조각사에 있어서의 위상을 재평가 받아 국보로 승격하게 되었다.

(2018. 04. 20)

석불과 관련된 기록은 고려 말 승려 무외(無畏)가 쓴 「용화회소(龍華會䟽)」를 비롯해『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

고려 문인 이색(李穡, 1328~1396)의 시 등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내용을 종합해 보면 고려왕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당대 뛰어난 조각장이 참여하여

제작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보살상은 좌우로 빗은 머릿결 위로 높은 원통형 보관(寶冠)을 썼고 두 손으로 청동제 꽃을 들고 있다.

널찍하고 명료한 이목구비와 균제되지 않는 압도적인 크기 등은 한국 불상 중 가장 독창적이고 특색 있는 미의식을 창출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우아한 이상미(理想美)를 축구한 통일신라 조각과는 전혀 다른 파격적이고 대범한 미적 감각을 담고 있는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우리나라 불교신앙과 조각사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독창성과 완전성 측면에서도 뛰어나 국보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문화재청)






- 보물 제232호 논산 관촉사 석등 (論山 灌燭寺 石燈) -


관촉사 앞뜰의 큰 석불 앞에 놓여있는 4각 석등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이 중심이 되어,

아래에는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평면이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고려식으로,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 새겨진 굵직한 연꽃무늬가 두터움을 드러내고 있다.

가운데받침은 각이없는 굵고 둥그런 기둥으로 세웠는데, 위아래 양끝에는 두줄기의 띠를 두르고, 중간에는 세줄기의 띠를 둘렀다.

특히 중간의 세 줄기 중에서 가장 굵게 두른 가운데 띠에는 8송이의 꽃을 조각하여 곱게 장식하였다.

2층으로 이루어진 화사석은 1층에 4개의 기둥을 세워 지붕돌을 받치도록 하였는데, 기둥이 빈약한 반면 창은 터무니없이 널찍하다.

각 층의 지붕들은 처마가 가볍게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네 귀퉁이에는 큼직한 꽃 조각이 서 있어 부드러운 조화를 이룬다.

꼭대기는 불꽃무늬가 새겨진 큼직한 꽃봉오리모양의 장식을 두었는데, 조각이 두터워서 인지 무거워 보인다.

전체적으로 뒤에 서 있는 석불 못지않게 힘차 보이나, 화사석의 네 기둥이 가늘어 균형이 깨지고,

받침의 가운데기둥이 너무 굵고 각이 없어 그 효과가 줄어든 감이 있다.

뒤의 석불 즉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과 함께 고려 광종 19년(968)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남한에서는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다음으로 거대한 규모를 보여준다.

(문화재청)







- 관촉사 석탑 -
















충남 논산 반야산 관촉사

2010. 0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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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148호 청양삼층석탑, 보물 제197호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


문화재자료 제148호 청양삼층석탑, 보물 제197호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



- 문화재자료 제148호 청양삼층석탑 (靑陽三層石塔) -


청양삼존불입상(보물 제97호)과 함께 ‘일명사’라는 옛 절터에 있던 탑으로, 군청 뒤편에 옮겼다가 1961년 지금의 장소로 옮겨 세웠다.

형태는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간결하게 짜여 있고, 탑신은 각 층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한 돌로 만들어 쌓아 올렸다.

탑신의 1층 몸돌 앞면에는 문짝모양을 본 떠 새겼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앙화(仰花:활짝 핀 연꽃모양 장식) 등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 보물 제197호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 (靑陽 邑內里 石造如來三尊立像) -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따로 가지고 있는 독립된 불상이 삼존불(三尊佛)을 이루고 있다.

본존불은 당당한 체구의 불상으로 머리에는 큼직한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있고, 직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에서는 강인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어깨는 넓고 당당하며 군데군데 옷 사이로 드러난 신체 역시 당당하고 강인한 느낌을 준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에서 발목 부분까지 U자형의 주름을 이루면서 내려오고 있으며, 다리 사이에는 바지 자락이 표현되어 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는 배(舟) 모양으로 불상과 같은 돌로 만들었는데, 파손이 심해서 세부표현을 확인하기 어렵다.

왼쪽 협시보살도 왼쪽 어깨에서부터 오른쪽 허리까지 부러진 것을 복원하여 놓은 것이다.

얼굴은 본존과 같은 형태지만 훨씬 부드러우며, 허리를 왼쪽으로 약간 틀어 몸의 중심을 본존쪽으로 두고 있다.

옷은 밑부분이 넓게 퍼져 무겁고 둔중한 느낌이 든다.

오른쪽 협시보살 역시 모든 면에서 왼쪽과 같으나 윤곽이 둥글고 앳된 모습이 다르다.

당당한 신체표현, 강인한 신체묘사, 유려한 각선 등에서 상당한 기량을 보이고 있지만,

평판적인 신체묘사와 형식화된 조각기법으로 볼 때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문화재자료 제148호 청양삼층석탑, 보물 제197호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

충남 청양

2010. 0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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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부여박물관


국립 부여박물관



- 문화재자료 제104호 동남리석탑 (東南里石塔) -


국립부여박물관 앞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석목리 논절부락의 고려시대 옛 절터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전체의 무게를 지탱해주는 기단(基壇)을 2층으로 마련하고, 그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고 있는데, 아래층 기단은 일부만 남아있고,

탑신의 4층 몸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위층 기단의 맨윗돌은 탑신의 1층 몸돌을 괴어주는 부분 주위로 넓게 테두리를 두른 뒤 연꽃무늬를 새겨 장식하였다.

탑신의 각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2층 몸돌부터 갑자기 높이가 줄어들어 1층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두텁고 무거워 보이는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윗면은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으며, 네 귀퉁이는 희미하게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쳐주던 받침돌만 남아있다.

돌을 짜놓은 수법이 소박하고 다듬은 솜씨가 서투르나, 고려시대 후기 당시의 석탑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어 양식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









- 문화재자료 제106호 박물관석조여래입상 (博物館石造如來立像) -


1933년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산의 천왕사 절터에서 발견되어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옮겨져 있는 불상이다.

몸체에 비하여 머리가 크며 어깨와 하체가 거의 일직선으로 곧바로 서 있는 자세이다.

얼굴은 살이 올라 풍만하며 눈은 반쯤 감겨있다.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새겨져 있으며, 양 어깨에 걸친 옷은 아무런 무늬없이 발 밑까지 내려져 있다.

오른손은 위로 올려 손바닥이 밖을 향하게 하였고, 왼손은 아래로 늘어뜨려 손바닥이 보이게 하였다.

몸체에 비해 머리가 크게 표현되어 전체의 균형을 잃고 비례가 맞지 않는 조각수법으로 보아

충청도 일원에서 유행했던 고려시대의 지방화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 문화재자료 제121호 동사리석탑 (東寺里石塔) -


국립부여박물관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탑이 있었던 원래의 터에는 비석을 세워 그 자리를 밝혀두었다.

형태는 전체의 무게를 지탱해주는 기단(基壇)을 2층으로 마련하고, 그 위로 5층에 이르는 탑신(塔身)을 쌓아올렸다.

아래층 기단의 네 면에는 면마다 3개씩의 안상(眼象)을 얕게 새겨 장식하였다.

위층 기단은 윗면에 연꽃무늬를 두르고, 네 모퉁이마다 돌출된 꽃조각을 두었다.

탑신의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는데, 2층 몸돌부터는 심하게 높이가 줄어들어 1층의 부피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붕돌은 낙수면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곡선을 이루고 있고,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부드럽게 위로 들려 있으며,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새겨놓았다.

꼭대기에 놓인 머리장식은 훗날 새로 만들어 복원해 놓은 것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탑신의 몸돌 높이가 심하게 낮아지고 있어, 전체적으로 길쭉하고 가느다란 인상을 준다.

고려시대에 세운 탑으로, 당시에 유행하던 석탑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문화재청)









- 보물 제194호 부여 석조 (扶餘 石槽) -


부여현의 동헌건물 앞에 있었던 것을 일제시대에 옛 박물관 뜰로 옮겼다가 현재의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부여석조는 왕궁에서 연꽃을 심어 그 꽃을 즐겼다는 전설이 있는 백제시대의 유물로, ‘工’자형의 받침대 위에 둥근 꽃망울 형태로 올려져 있다.

받침대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간결한 모양이다.

그 위에 놓인 석조는 입구가 약간 오므라들면서 밖으로 둥글게 원호를 그리며, 바닥은 평평한 듯 하나 완만한 곡선이다.

표면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8개의 세로줄이 새겨져 있고,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의 1층 탑몸돌에 새겨진 당나라가 백제를 평정했다는 내용과 같은 글을 새기려던 흔적이 보인다.

이 석조에는 연꽃무늬 장식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사찰과 관계된 유물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본래 이 석조가 있었던 장소가 백제시대의 왕궁터로 전해지고 있어 당시 왕궁에서 쓰이던 석련지(石蓮池)가 아니었나 짐작된다.

형태가 풍만하면서도 깔끔한 곡선으로 처리된 석조로, 백제인의 간결하고 소박한 미적 감각이 잘 나타나 있다.

(문화재청)





국립 부여박물관

2010. 04.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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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 영인산 관음사


충남 아산 영인산 관음사



- 문화재자료 제232호 관음사석탑 (觀音寺石塔) -


관음사 사찰 내 대웅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로 3층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기단부는 탑신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파손되어 있으며, 위층 기단 위로 깎아둔 2단의 괴임돌 역시 모서리가 파손된 상태로 남아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딴돌로 조성하였다.

몸돌은 위로 오를수록 높이가 줄고 있으나 1층 몸돌이 다소 높직한 느낌이다.

몸돌 각 모서리에는 가지런한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을 뿐 별다른 장식은 없다.

두꺼워 보이는 지붕돌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다가 네 귀퉁이에서 약간 치켜올라 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1·2층이 4단이고 3층은 3단이며, 각 귀퉁이에는 작은 종을 매달았던 구멍이 뚫려 있다.

전체적으로 돌을 다듬은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











- 문화재자료 제233호 관음사석조여래불상 (觀音寺石造如來佛像) -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관음사에 있는 불상으로, 하나의 돌에 불신, 광배(光背), 대좌(臺座)를 조각하였다.

높이 320㎝, 폭 110㎝, 두께 18㎝이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여 자비심이 느껴지는데, 이마에는 작은 구멍이 뚫어져 있다.

당당한 어깨를 모두 감싸고 있는 옷에는 아무런 무늬도 표현하지 않았다.

오른손을 쭉 뻗어 허벅지 부근의 옷자락을 가볍게 잡고 있으며, 왼 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오른쪽 가슴에 대고 있다.

연꽃잎이 새겨진 대좌 위에 조각되어 있는 두 발은 발뒤꿈치를 서로 붙인 상태에서 발가락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온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는 머리광배와 몸광배의 흔적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전체적인 양식과 조각기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충남 아산 영인산 관음사

2010. 0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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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 정림사지


충남 부여 정림사지



- 국보 제9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扶餘 定林寺址 五層石塔) -


부여 정림사터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좁고 낮은 1단의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평제탑’이라고 잘못 불리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기단은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돌을 끼워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놓았는데,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를 볼록하게 표현하는 목조건물의 배흘림기법을 이용하였다. 

얇고 넓은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부드럽게 들려져 단아한 자태를 보여준다.

좁고 얕은 1단의 기단과 배흘림기법의 기둥표현, 얇고 넓은 지붕돌의 형태 등은 목조건물의 형식을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단순한 모방이 아닌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여주며, 전체의 형태가 매우 장중하고 아름답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과 함께 2기만 남아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를 통해 격조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문화재청)














- 보물 제108호 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 (扶餘 定林寺址 石造如來坐像) -


충청남도 부여의 정림사지에 남아 있는 석조불상으로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와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다. 

정림사는 6세기 중엽에 처음 창건되어 백제 멸망 때까지 번창하였던 사찰로 고려시대에 다시 번창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석불상은 고려 때의 번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의 머리와 보관은 제작 당시의 것이 아니라, 후대에 다시 만들어 얹은 것으로 보인다. 

신체는 극심한 파괴와 마멸로 형체만 겨우 남아 있어 세부적인 양식과 수법을 알아보기 어렵지만, 어깨가 밋밋하게 내려와 왜소한 몸집을 보여준다. 

좁아진 어깨와 가슴으로 올라간 왼손의 표현으로 보아 왼손 검지 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쥔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상대·중대·하대로 이루어진 8각으로 불상보다 공들여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상대는 연꽃이 활작 핀 모양이며, 중대의 8각 받침돌은 각 면에 큼직한 눈모양을 새겼다. 

하대에는 연꽃이 엎어진 모양과 안상을 3중으로 중첩되게 표현했다.

현재 불상이 자리잡고 있는 위치가 백제시대 정림사지의 강당 자리로 이곳에서 발견된 명문기와를 통해 

이 작품은 고려시대에 절을 고쳐 지을때 세운 본존불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충남 부여 정림사지

2009. 0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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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 반야산 관촉사


충남 논산 반야산 관촉사



- 국보 제323호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論山 灌燭寺 石造彌勒菩薩立像) -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고려 광종(光宗, 재위 949~975)의 명으로 968년경 승려 조각장 혜명(慧明)이 제작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석불로,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18호로 지정․관리되어 오다가, 이번에 고려시대 신앙과 불교조각사에 있어서의 위상을 재평가 받아 국보로 승격하게 되었다.

석불과 관련된 기록은 고려 말 승려 무외(無畏)가 쓴 「용화회소(龍華會䟽)」를 비롯해『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 

고려 문인 이색(李穡, 1328~1396)의 시 등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내용을 종합해 보면 고려왕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당대 뛰어난 조각장이 참여하여

제작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보살상은 좌우로 빗은 머릿결 위로 높은 원통형 보관(寶冠)을 썼고 두 손으로 청동제 꽃을 들고 있다. 

널찍하고 명료한 이목구비와 균제되지 않는 압도적인 크기 등은 한국 불상 중 가장 독창적이고 특색 있는 미의식을 창출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우아한 이상미(理想美)를 축구한 통일신라 조각과는 전혀 다른 파격적이고 대범한 미적 감각을 담고 있는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우리나라 불교신앙과 조각사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독창성과 완전성 측면에서도 뛰어나 국보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문화재청)








*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흔히 '은진미륵'으로 불립니다.




- 보물 제232호 논산 관촉사 석등 (論山 灌燭寺 石燈) -




관촉사 앞뜰의 큰 석불 앞에 놓여있는 4각 석등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이 중심이 되어, 아래에는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평면이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고려식으로,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 새겨진 굵직한 연꽃무늬가 두터움을 드러내고 있다. 

가운데받침은 각이없는 굵고 둥그런 기둥으로 세웠는데, 위아래 양끝에는 두줄기의 띠를 두르고, 중간에는 세줄기의 띠를 둘렀다. 

특히 중간의 세 줄기 중에서 가장 굵게 두른 가운데 띠에는 8송이의 꽃을 조각하여 곱게 장식하였다. 

2층으로 이루어진 화사석은 1층에 4개의 기둥을 세워 지붕돌을 받치도록 하였는데, 기둥이 빈약한 반면 창은 터무니없이 널찍하다. 

각 층의 지붕들은 처마가 가볍게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네 귀퉁이에는 큼직한 꽃 조각이 서 있어 부드러운 조화를 이룬다. 

꼭대기는 불꽃무늬가 새겨진 큼직한 꽃봉오리모양의 장식을 두었는데, 조각이 두터워서 인지 무거워 보인다.

전체적으로 뒤에 서 있는 석불 못지않게 힘차 보이나, 화사석의 네 기둥이 가늘어 균형이 깨지고, 받침의 가운데기둥이 너무 굵고 각이 없어 

그 효과가 줄어든 감이 있다. 

뒤의 석불 즉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과 함께 고려 광종 19년(968)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남한에서는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다음으로 거대한 규모를 보여준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53호 관촉사배례석 (灌燭寺拜禮石) -



관촉사 석등에서 약 10m 동쪽으로 떨어진 화단안에 있는 것으로, 절을 찾은 불자들이 부처님께 합장하고 예를 갖추는 장소로 사용된다.

직사각형의 받침돌 형태로, 옆면에는 안상(眼象)을 옅게 새긴 후 그 안에 고사리 무늬 같은 버섯구름 모양을 새겨 넣었다. 

윗면에는 가운데 커다란 연꽃을 중심으로 좌우에 그보다 약간 작은 연꽃 두 송이와 2개의 연줄기를 조각하였다.

조각이 정교하고 장중한 맛이 풍기며,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우수한 작품으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충남 논산 반야산 관촉사

2009. 05.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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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시 향토유적 제42호 삼죽기솔리국사암석조여래입상

 

안성시 향토유족 제42호 삼죽기솔리국사암석조여래입상

 

 

석불은 본존과 양협시보살을 배치한 삼존불로, 발목 이하는 땅에 매몰되어 있다.

지상에 노출된 본존의 높이는 320cm이고, 3단의 원형보개를 육계부분에 끼워 놓았다.

얼굴은 타원형으로 두 귀가 어깨까지 늘어져 있으며 수인은 오른손을 가슴에서 손가락을 안으로 모으고, 왼손은 배에 대고 손가락을 쫙 펴고 있다.

법의는 양어깨를 덮은 통견으로, 양팔에 도식적인 주름을 새기고 있다.

하반신에 U자형으로 주름이 있는 것으로 봐서 군의를 가슴부위에서 묶은 것으로 보는데, 허벅지 위에 커다란 연화문을 새겨놓았다.

우협시와 좌협시 역시 둥근 보개를 쓰고, 본존과 동일한 표현자세를 하고 있는데 크기가 약간 작고, 우협시는 석장을 들고,

좌협시는 약병을 들고 있다.

불상의 후면에는 아무런 조각을 가하지 않았다.

이 석조삼존 입상은 고려후기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성시청)

* 기솔리 국사암 석조여래입상은 흔히 '궁예미륵'이라 불립니다.

 

  

 

 

 

안성시 향토유적 제42호 삼죽기솔리국사암석조여래입상

2007. 0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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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36호 기솔리석불입상

 

시도유형문화재 제36호 기솔리석불입상 (基率里石佛立像)

 

 

 

 

 

 

 

 

 

 

 

경기도 안성에 2구의 석불이 나란히 서 있는데, 커다란 돌기둥에 불상의 전체적인 모습을 간략하게 조각한 것이다.

높이 5m나 되는 이 불상들은 아마도 1장(丈) 6척(尺)(약480㎝)의 장륙불상으로 만든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당시 흔히 조성되던 장륙불상의 한 예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안성지방을 중심으로 고려 초기에 대형 미륵불을 조성하던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보이며,

실제로 마을에서는 북쪽의 것을 남(男) 미륵불, 남쪽의 것을 여(女) 미륵불이라고 부른다.

4각형의 얼굴은 매우 평면적인 모습이고, 굵은 목에는 형식적인 3개의 주름이 표현되었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전면에 완만한 U자형 옷주름이 돌기둥 같은 신체를 감싸고 있다.

양 손은 가슴에서 손바닥을 정면으로 향해서 펴서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비대한 얼굴에 나타난 세부 표현, 장방형의 신체에 짧은 상체,

각이 진 어깨와 양감 없는 체구 등에서 고려시대의 지방화 된 석불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거구의 석불들은 이 지방 일대에 상당수 남아 있어서 고려시대 지방화 된 석불양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

 

 

시도유형문화재 제36호 기솔리석불입상

2007. 0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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