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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에 해당되는 글 24건

  1. 2019.04.11 전북 김제 모악산 귀신사
  2. 2019.03.31 시도유형문화재 제72호 회사동석탑
  3. 2019.03.27 충남 천안 광덕산 광덕사
  4. 2019.03.24 전북 익산 미륵산 심곡사
  5. 2019.03.19 시도유형문화재 제66호 탑동삼층석탑
  6. 2019.03.13 시도유형문화재 제225호 충주 추평리 삼층석탑
  7. 2019.03.12 시도유형문화재 제8호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제271호 충주 창동리 석조약사여래입상
  8. 2019.02.20 시도유형문화재 제120호 옥천 두암리 삼층석탑
  9. 2019.02.17 시도유형문화재 제60호 논산 탑정리 석탑
  10. 2019.02.16 충남 부여 만수산 무량사

전북 김제 모악산 귀신사

전북 김제 모악산 귀신사

 

 

 

- 보물 제826호 김제 귀신사 대적광전 (金堤 歸信寺 大寂光殿) -

 

귀신사(歸信寺)는 신라 문무왕 16년(678) 의상대사가 세운 절로 8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전한다.

이 절에는 예스러운 맛이 배어 있는 건물과 연꽃무늬로 된 받침대, 동물 모양의 돌 등 많은 석물들을 볼 수 있다.

지혜의 빛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은 17세기 경에 다시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앞면 3칸 문에는 빗살무늬 창호를 달았고, 오른쪽과 왼쪽 끝칸인 퇴칸은 벽으로 만든 점이 특이하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62호 귀신사석탑 (歸信寺石塔) -

 

귀신사는 통일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절안에 이 3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바닥돌 위에 여러 장의 돌을 짜맞추어 기단(基壇)을 만들고 그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탑신의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선명하게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처마가 거의 평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얇고 넓은 지붕돌의 곡선미와 여러 개의 돌을 짜맞추어 조성된 수법 등으로 보아 백제 석탑 양식을 이어받은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64호 귀신사석수 (歸信寺石獸) -

 

귀신사 3층 석탑 앞쪽에 놓여 있는 것으로, 웅크리고 있는 사자상 등 위로 남근석(남성의 생식기 모양으로 다듬은 돌)이 놓여 있다.

사자상은 머리를 치켜들고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남근석은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랫부분은 대나무에서와 같은 옅은 마디를 두었다.

사찰 내에서 이러한 조각상을 찾아보기란 매우 드문 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두가지의 설이 제기되고 있다.

하나는 풍수지리상으로 이 터가 좋은 형상이 아니어서 이를 누르기 위해 세웠을 것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원래 남근석을 두는 사찰은 백제 왕실의 내원사찰(內願寺刹)뿐이므로, 이로 보아 이 절은 백제 때의 사찰일 것이라는 설이 그것이다.

만든 시기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과 사실적인 조각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다.

(문화재청)

 

 

전북 김제 모악산 귀신사

2010. 08.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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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72호 회사동석탑

시도유형문화재 제72호 회사동석탑 (檜寺洞石塔)

 

 

 

절터로 보이는 밭가운데 서 있는 탑으로 2층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탑신의 1층 몸돌을 괴는 곳에 굵은 2단의 괴임을 두어 윗돌을 받치고 있다.

탑신의 1층 몸돌 모서리에는 희미한 기둥 모양의 조각이 보인다.

지붕돌은 각 층 모두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는데, 1층 지붕돌이 약간 파손되긴 하였으나 중후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이 든다.

꼭대기에는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 장식)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으나 이것 역시 뒤에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기단부가 왜소하고 간략화되어 안정감을 잃었으나 140㎝라는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탑신부가 고르고 건실하다.

통일신라의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위로 탑신을 받치는 굵은 괴임을 둔 점, 지붕돌 밑면받침이 3단으로 줄어든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시도유형문화재 제72호 회사동석탑

전북 진안

2010. 0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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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 광덕산 광덕사

충남 천안 광덕산 광덕사

 

- 천연기념물 제398호천안 광덕사 호두나무 (天安 廣德寺 호두나무) -

 

호도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이며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 이남 지역에 주로 분포하며, 약 20m까지 자란다.

꽃은 4∼5월에 피고, 9월에 둥근 열매가 익는다.

이 호도나무는 나이가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8.2m이며,

지상 60㎝의 높이에서 두 개 줄기로 갈라져 가슴높이의 둘레가 각각 2.62m, 2.50m이다.

호도나무 3m 앞에는 이 나무의 전설과 관련된 ‘유청신 선생 호도나무 시식지’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약 700년 전인 고려 충렬왕 16년(1290) 9월에 영밀공 유청신 선생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임금의 수레를 모시고 돌아올 때 호도나무의 어린 나무와 열매를 가져와 어린 나무는 광덕사 안에 심고,

열매는 유청신 선생의 고향집 뜰 앞에 심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의 나무가 그 때 심은 것인지의 정확한 근거자료는

찾지 못하고 있다.

이곳 마을에서는 이것이 우리나라에 호도가 전래된 시초가 되었다 하여 이곳을 호도나무 시배지(처음 심은 곳)라 부르고 있다.

이 호도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서 문화적·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120호광덕사삼층석탑 (廣德寺三層石塔) -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의 석탑이다.

위층 기단과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고, 특히 탑신의 1층 몸돌에는 문모양 안에 자물쇠를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윗면에는 급한 경사가 흐르고, 네 귀퉁이는 위로 치켜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 : 엎어놓은 그릇 모양)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아래층 기단의 기둥 장식이 생략되고,

지붕돌 받침이 4단으로 줄어드는 점 등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 문화재자료 제246호광덕사 대웅전 (廣德寺 大雄殿) -

 

광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자장율사가 지었고 흥덕왕 때 진산조사가 다시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리기 전에는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에서 가장 큰 절 중 하나였다고 한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1983년에 완전히 해체하여 복원하였는데 처음보다 크게 세웠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에는 석가여래와 그의 제자인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불상을 모시고 있으며,

불상 뒤쪽에 영조 17년(1741)에 제작된 탱화가 있다.

(문화재청)

 

 

 

 

충남 천안 광덕산 광덕사

2010. 07.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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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 미륵산 심곡사


전북 익산 미륵산 심곡사






- 시도유형문화재 제192호 심곡사칠층석탑 (深谷寺七層石塔) -




신라 무염대사가 처음 지었다는 심곡사의 대웅전 앞마당에 자리한 칠층석탑으로서,

원래는 심곡사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가 이곳으로 옮겨진 것이라고 한다.

1층의 받침돌 위에 7층의 지붕돌을 올리고 맨 위에는 작은 연꽃봉우리 모양의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으로 전체적으로 높다란 느낌을 준다.

바닥돌 위에 있는 받침돌에는 엎어 놓은 모습의 연꽃문양과 위를 향한 모습의 연꽃문양이 아래 위로 각각 새겨져 있다.

탑몸돌과 지붕돌이 1매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탑몸돌에는 기둥 모양이 생략되었다.

지붕돌 받침은 3개로 표현되어 있고 경사가 완만한 지붕돌의 처마끝은 모서리에 가서 살짝 들어 올려져 백제탑의 전통을 이어오는 면이 보인다.

탑의 일부가 나중에 고쳐진 흔적이 있고 받침 부분과 탑몸 부분이 서로 조화되지 못한 점이 있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볼 때

고려시대 말∼조선시대 초기 석탑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받침부분에 나타난 고려시대 탑의 양식과 지붕돌 받침에 나타난 조선시대 탑의 양식, 지붕돌의 백제탑 양식을 모두 간직하고 있어

익산 지역에서 석탑 변화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문화재청)




















- 문화재자료 제87호 심곡사대웅전 (深谷寺大雄殿) -




심곡사는 신라 무염대사가 처음 지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대웅전은 조선 순조 19년(1819)에 세웠다고 한다.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안쪽 가운데에 석가모니불을 그 좌우에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는데, 불상의 수법과 양식으로 보아 조선시대 작품으로 추정한다.

그 외에 아미타여래후불탱화 2점, 신중탱화 1점, 현왕탱화 1점, 칠성탱화 1점과 목조나한상 1구가 있다.

(문화재청)















전북 익산 미륵산 심곡사

2010. 0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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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66호 탑동삼층석탑


시도유형문화재 제66호 탑동삼층석탑 (塔洞三層石塔)




1층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후 머리장식을 얹은 탑으로, 백제탑 양식을 일부 보이고 있다.

기단은 밑바닥돌이 탑의 보수 당시 콘크리트에 묻혀 버렸다.

탑신부는 각 부분을 조립하듯 여러 돌로 짜 맞추었는데, 1층 몸돌은 큰 편이나, 2·3층의 몸돌은 높이가 급격히 낮아졌다.

1층 지붕돌은 별도의 돌로 2단의 받침을 두었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네 귀퉁이가 살짝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장식), 앙화(仰花:활짝 핀 연꽃모양장식) 등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있다.

옛 백제 지역에 세운 고려시대의 석탑으로서, 백제탑 양식의 흐름을 따르고 있어 지방적 특색을 보여준다.

(문화재청)

















시도유형문화재 제66호 탑동삼층석탑

전북 군산

2010. 0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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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225호 충주 추평리 삼층석탑


시도유형문화재 제225호 충주 추평리 삼층석탑 (忠州 楸坪里 三層石塔)



추평리(楸坪里) 탑평(塔坪) 마을에 위치하며 탑 주변의 경작지와 인근 민가일대까지 주초석과 많은 기와들이 나오고 있다.

또한 추평리사지의 암자로 추정되는 뒤쪽 8부 능선상에도 많은 기와가 확인되고 있다.

사명(寺名)은 밝혀진 바 없으나 자기(磁器)와 고려시대 와편(瓦片)들이 상당량 출토되고 있어 고려시대 전반기인 11세기경 축조된 탑으로 추정된다.

이 주변 사지(寺址)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엄정사(嚴政寺)’일 가능성이 크나 현재로선 확인할 수는 없다.

절터는 3층석탑이 있는 주변과 인근 민가일대까지 포함되는 약 3,000평 규모로 추정된다.

단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갖춘 ‘일반형석탑(一般型石塔)’으로 2매로 조립된 갑석(甲石) 위에 초층 탑신이 안정감있게 올려지고

탑신의 양쪽에 우주(隅柱)가 정연하게 모각(模刻)되었다.

낙수면은 급하며 옥개(屋蓋)에는 전각(轉角)의 반전이 있으며 탑신괴임은 생략되었다.

옥개의 양쪽 끝에는 풍경원공의 흔적이 또렷하고 층급받침은 모두 4단이다.

상륜부에는 복발(覆鉢)로 보이는 부재(部材)가 남아 있다.

탑은 단층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갖춘 일반형의 석탑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3층까지 남아 있다.

탑 주변에서 토기편 외에 수막새기와, 백자발 등 다량의 유물이 확인되고 있다.

충주 추평리삼층석탑은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고려시대에 건조된 일반형 석탑으로 주변일대에서 수습되는 자기(磁器)와 와편(瓦片)으로 보아

고려조에 번창했던 사찰(寺刹)로 추정되며 탑신(塔身)의 우주(隅柱)표현, 전각(轉角)의 반전으로 보아 신라시대 양식을 이어 받으면서

다소 변형된 고려초기 탑의 양식을 고찰할 수 있는 석탑으로 보존가치가 높다.

(문화재청)

















시도유형문화재 제225호 충주 추평리 삼층석탑

2010.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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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8호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제271호 충주 창동리 석조약사여래입상


시도유형문화재 제8호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忠州 創洞里 五層石塔), 

시도유형문화재 제271호 충주 창동리 석조약사여래입상 (忠州 倉洞里 石造藥師如來立像)






- 시도유형문화재 제8호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


중원탑평리칠층석탑(국보 제6호)에서 남쪽으로 2㎞쯤 되는 지점에 자리한 5층 석탑으로,

원래는 민가의 뒷뜰에 있던 것을 100여m 남쪽으로 옮겨 복원해 놓은 것이다.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며, 현재 맨 위의 머리장식이 없어진 채 그 받침돌만 남아 있다.

위로 오를수록 조금씩 규모가 줄어드는 탑신의 각 몸돌에는 네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지붕돌과 몸돌은 각기 다른 돌로 조성되어 있는데 5층에서만은 한 돌로 되어 있어 흥미롭다.

지붕은 네 귀퉁이가 부드럽게 치켜올라갔고, 위로 올라갈수록 밑면의 받침수가 줄어드는 특징을 보인다.

이 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단 위에 두툼한 괴임돌을 끼워 탑신의 1층 몸돌을 받치고 있는 것과 각 층 지붕돌 위에도 비슷한 괴임을 표현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장식이 거의 없는 탑신에 작은 변화를 주고 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탑은, 섬세한 조각은 볼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 구성이 간략화되고 대범하여 고려인의 기상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271호 충주 창동리 석조약사여래입상 -



화강암 판석 1매에 보주형 광배와 불신을 부조한 불상으로소발위에 두터운 육계가 표현되었으며 눈썹은 반원형이며 얼굴은 통통하게 살이 쪘다.

양귀는 어깨까지 닿으며 삼도가 표현되었다.

법의는 통견이며 왼손을 가슴에 대고 그 위에 약합을 쥐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위까지 올려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고 있다.

대좌는 장방형 판석에 연화문을 새기고 불상을 끼우도록 되어 있으나 원래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시도유형문화재 제8호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시도유형문화재 제271호 충주 창동리 석조약사여래입상

2010.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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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120호 옥천 두암리 삼층석탑


시도유형문화재 제120호 옥천 두암리 삼층석탑 (沃川 斗岩里 三層石塔)



두암마을의 민가 옆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주위에서 고려시대의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이곳이 당시의 옛 절터임을 알게 되었다.

탑은 전체의 무게를 받치는 기단(基壇)을 2층으로 쌓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꼭대기의 머리장식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본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아래층 기단에는 각 면마다 3개씩의 안상(眼象)을 움푹 들어가게 새겼고, 위층 기단에는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부의 1층 몸돌에는 한쪽면에 문짝모양을 새겼는데 그 안에 자물쇠도 표현해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위로 살짝 들려 있다.

2층 기단에 3층 탑신이라는 통일신라의 기본양식을 따르면서도,

아래층 기단이나 지붕돌 등에서 그 전형을 벗어나 있어 고려시대 전기에 세운 탑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시도유형문화재 제120호 옥천 두암리 삼층석탑

충북 옥천

2010. 0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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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60호 논산 탑정리 석탑


시도유형문화재 제60호 논산탑정리석탑 (論山塔亭里石塔)



탑정 저수지 북쪽 끝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전체적인 모습이 석등의 양식을 많이 따르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태조가 남으로 견훤을 정벌할 때에 이곳에 주둔하여 ‘어린사(魚鱗寺)’라는 절을 지었다고 한다.

절 주변으로 성을 쌓아두었다고 하나 지금은 남아있는 것이 없다.

원래 탑은 이 자리에서 50m 떨어진 남쪽에 있었으나 일제시대에 저수지 공사를 하면서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이곳에 후백제 시대의 대명스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전하지만 문헌에 남겨진 기록은 없다.

탑은 바닥돌 위에 8각의 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 받침돌을 두어 탑신(塔身)을 받치도록 하였다.

탑신 아래의 받침부분은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석등 양식으로, 연꽃을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탑신의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본떠 새겼고, 지붕돌은 밑면 안쪽에 얕은 3단의 받침을 두었다.

현재 1층까지만 남아 있는데 원래 몇 층이었는지 알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이다. 만든 시기는 고려시대일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시도유형문화재 제60호 논산 탑정리 석탑

충남 논산

2010. 0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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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 만수산 무량사


충남 부여 만수산 무량사









- 시도유형문화재 제57호 무량사당간지주 (無量寺幢竿支柱) -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는 이곳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걸어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의 양쪽에 서서 이를 지탱해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드물게 당간이 있으나 대부분 두 기둥만 남아 있다.

이 당간지주는 무량사 천왕문 동쪽에 남아 있는 것으로, 두 개의 길다란 돌기둥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기둥 끝은 안쪽면에서 바깥쪽으로 둥글게 다듬었고, 앞뒷면의 가장자리에는 테두리 선을 돌렸으며, 양 옆면 가운데에는 세로로 돌출된 띠를 새겼다.

마주보는 기둥의 안쪽면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2개의 구멍을 각각 뚫어 놓았다.

돌기둥 사이에는 당간 받침돌이 끼워져 있는데, 그 중앙에 당간을 받는 기둥자리를 파고 그 주위를 둥글고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아무런 장식이 없는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통일신라시대에서 굳어진 제작방식을 따라 고려 전기에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











- 보물 제185호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扶餘 無量寺 五層石塔) -


무량사 극락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웅장한 모습의 5층 석탑이다.

탑을 받치는 기단(基壇)은 1단으로, 둥글게 다듬은 두툼한 석재를 포함한 층단으로 괴임을 만들고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세웠다.

탑신(塔身)은 지붕돌과 몸돌을 한 층으로 하여 5층을 이루고 있다.

네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있는 몸돌은 지붕돌에 비하여 높이가 낮은 편이나 전체적으로 알맞은 비례를 보이고 있어 우아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붕돌은 얇고 넓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다.

지붕돌과 밑의 받침은 딴 돌로 구성되어 있고 받침의 수는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낮은 받침돌 위로 머리장식의 일부가 남아있다.

백제와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조화시켜 만든 고려 전기의 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백제의 옛 땅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백제의 기법이 이어졌고 통일신라의 시대적인 양식도 계승되었다.

해체공사를 할 때 탑신의 1층 몸돌에서 금동제 아미타여래좌상, 지장보살상, 관음보살상의 삼존상이 나왔고,

3층에서는 금동보살상, 5층에서는 사리구(舍利具)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문화재청)











- 보물 제356호 부여 무량사 극락전 (扶餘 無量寺 極樂殿) -


무량사는 신라 말에 범일이 세워 여러 차례 공사를 거쳤으나 자세한 연대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신라말 고승 무염대사가 일시 머물렀고, 고려시대에 크게 다시 지었으며, 김시습이 이 절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 건물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흔치않는 2층 불전으로 무량사의 중심 건물이다.

외관상으로는 2층이지만 내부에서는 아래·위층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트여 있다.

아래층 평면은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기둥 사이를 나누어 놓았는데 기둥은 매우 높은 것을 사용하였다.

위층은 아래층에 세운 높은기둥이 그대로 연장되어 4면의 벽면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원래는 그 얼마되지 않는 낮은 벽면에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창문을 설치했었는데 지금은 나무판 벽으로 막아놓았다.

아미타여래삼존상을 모시고 있는 이 불전은 조선 중기의 양식적 특징을 잘 나타낸 불교 건축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우수한 건물이다.

(문화재청)





- 보물 제233호 부여 무량사 석등 (扶餘 無量寺 石燈) -


무량사 법당 앞뜰에 세워져 있는 8각 석등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네모난 바닥돌 위로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아래받침돌은 연꽃 8잎이 조각되어 있고, 가운데받침은 기둥으로 길게 세워져있으며 그 위로 연꽃이 새겨진 윗받침돌이 놓여 있다.

화사석은 8면 중 4면은 넓고, 4면은 좁은 형태로, 넓은 4면에 창이 뚫려 있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의 치켜올림과 처마의 경사가 잘 어울려 경쾌한 모습을 보여 주며, 꼭대기에는 자그만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솟아 있다.

전체적으로 지붕돌이 약간 큰 감이 있으나 경쾌한 곡선으로 인해 무거움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래·위받침돌의 연꽃조각은 통일신라 전성기의 화려한 연꽃무늬와는 차이가 있고, 각 부분이 형식적으로 흐른 감이 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인 10세기경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충남 부여 만수산 무량사

2010. 0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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