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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에 해당되는 글 30건

  1. 2019.06.12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장수 양악탑
  2. 2019.06.09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3호강정리오층석탑
  3. 2019.05.28 전북 유형문화재 제72호 회사동석탑
  4. 2019.05.14 시도유형문화재 제10호 운산리삼층석탑
  5. 2019.05.11 시도유형문화재 제27호 도림사지삼층석탑
  6. 2019.05.04 충남 공주 계룡산 신원사
  7. 2019.04.11 전북 김제 모악산 귀신사
  8. 2019.03.31 시도유형문화재 제72호 회사동석탑
  9. 2019.03.27 충남 천안 광덕산 광덕사
  10. 2019.03.24 전북 익산 미륵산 심곡사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장수 양악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장수양악탑 (長水陽岳塔)

 

 

 

수방사터로 전하는 양악리 산기슭 밭 가운데에 서 있는 작은 탑이다.

여러차례의 옮김과 세움을 반복하면서 탑의 일부부재가 없어지고 손상도 심한 상태이다.

탑은 네모난 받침돌 위에 탑신부(塔身部)를 쌓았다.

1층 몸돌은 2층 이상의 몸돌에 비해 긴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고, 2층 몸돌에만 기둥모양의 조각이 있다.

2층 이상의 지붕돌은 모두 위층의 몸돌과 한 돌로 되어있다.

1층 지붕돌을 제외한 나머지 지붕돌에는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5층 지붕돌이 없어진 채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올려져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지붕돌과 그 위층의 몸돌을 하나의 돌로 만들어 쌓아올렸는데 보기 드문 모습이며,

탑신 몸돌의 윗부분 너비를 좁혀 만든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일반적인 석탑 양식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장수 양악탑

2010.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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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3호강정리오층석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3호 강정리오층석탑 (江亭里五層石塔)

 

 

1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석탑이다.

기단과 탑신의 1층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두툼한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 : 엎어놓은 그릇모양장식)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탑신의 1층 몸돌이 높고, 2층 몸돌부터는 줄어드는 정도가 작다.

기단이 1층으로 줄어들고 지붕돌이 두꺼우며 지붕돌 밑면받침이 4단으로 줄어든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3호 강정리오층석탑

2010. 0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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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유형문화재 제72호 회사동석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2호 회사동석탑 (檜寺洞石塔) 

 

 

절터로 보이는 밭가운데 서 있는 탑으로 2층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탑신의 1층 몸돌을 괴는 곳에 굵은 2단의 괴임을 두어 윗돌을 받치고 있다.

탑신의 1층 몸돌 모서리에는 희미한 기둥 모양의 조각이 보인다.

지붕돌은 각 층 모두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는데, 1층 지붕돌이 약간 파손되긴 하였으나 중후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이 든다.

꼭대기에는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 장식)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으나 이것 역시 뒤에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기단부가 왜소하고 간략화되어 안정감을 잃었으나 140㎝라는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탑신부가 고르고 건실하다.

통일신라의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위로 탑신을 받치는 굵은 괴임을 둔 점, 지붕돌 밑면받침이 3단으로 줄어든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전북 유형문화재 제72호 회사동석탑

2010. 0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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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10호 운산리삼층석탑

- 시도유형문화재 제10호 운산리삼층석탑 (雲山里三層石塔) -

 

 

 

내후사동이라는 마을 이름이 말해주듯 옛 절터에 서 있는 탑으로, 2층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위층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씩이며,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동그란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가 왜소해 보이고, 탑신의 2층 몸돌이 1층 몸돌에 비해 급격히 줄어 들어 균형미를 잃었다.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양식상의 변화를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에 세웠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시도유형문화재 제10호 운산리 삼층석탑

2010. 0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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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27호 도림사지삼층석탑

 

- 시도유형문화재 제27호 도림사지삼층석탑 (道林寺址三層石塔) -

 

 

 

 

도림마을 뒷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주변에서 ‘도림사(道林寺) ’라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이 터가 도림사의 옛 터임을 알게 되었다.

도림사는 고려시대 이전에 창건되어 조선 중기까지 계속되었던 사찰로 추측되고 있는데, 화재로 모두 불에 타고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탑은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는 기단(基壇)을 2층으로 쌓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위층 기단은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조각했는데 제법 뚜렷한 형상이다.

탑신부는 각 층의 몸돌이 적당히 줄어들고 있어 깔끔한 균형을 이룬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3단씩 두었으며,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는 경사면은 네 귀퉁이에서 힘차게 위로 들려 있다.

전체적으로 아담하면서도 아름다운 비례를 보이고 있으며, 고려시대 석탑의 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1973년경 탑을 보수할 때 네모난 사리장치를 발견하여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문화재청)

 

 

 

 

 

 

 

 

 

 

 

 

 

 

 

 

 

 

 

 

 

 

 

 

 

 

 

 

 

시도유형문화재 제27호 도림사지 삼층석탑

2010. 0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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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계룡산 신원사

충남 공주 계룡산 신원사

 

 

- 시도유형문화재 제80호신원사대웅전 (新元寺大雄殿) -

신원사는 계룡산 기슭에 있는 절로 백제 의자왕 11년(651)에 보덕이 처음 지었다고 전한다.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여러 번 다시 지어졌고, 지금의 대웅전 건물은 조선 고종 13년(1876)에 보연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처마의 끝을 살짝 올려 우아한 멋을 나타내었다.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 건물이며, 연꽃을 조각하여 장식하였고 매우 간략한 양식으로 되어있다.

내부에는 아미타여래를 주존으로 하여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불상 위에 닫집을 설치하여 장엄하다.

(문화재청)

 

 

- 보물 제1293호공주 계룡산 중악단 (公州 鷄龍山 中嶽壇) -

중악단은 국가에서 계룡산신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마련한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계룡산은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왔으며, 신라 때 5악의 하나로 제사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북쪽의 묘향산을 상악으로,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으로, 중앙의 계룡산을 중악으로 하여 단을 모시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 3년(1394)에 처음 제사를 지냈다고 전하며, 효종 2년(1651)에 제단이 폐지되었다.

그 후 고종 16년(1879)에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짓고 중악단이라 하였다.

구릉지에 동북·서남을 중심축으로 하여 대문간채, 중문간채, 중악단을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하고 둘레에는 담장을 둘렀다.

건물배치와 공간구성에 단묘(壇廟)건축의 격식과 기법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중악단의 현판은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1846∼1917)가 쓴 것이라고 한다.

내부 중앙 뒤쪽에 단을 마련하고, 단 위에 나무상자를 설치하여 그 안에 계룡산신의 신위와 영정을 모셔 두었다.

1.5m의 높은 돌기단 위에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조선 후기의 특징적인 수법으로 조각·장식하여 화려하고 위엄있게 하였다.

또한 각 지붕 위에는 각각 7개씩 조각상을 배치하여 궁궐의 전각이나 문루 또는 도성의 문루에서 사용하던 기법을 쓴 점도 특이하다.

조선시대 상악단과 하악단은 없어져서 그 유적 내용을 알 수 없으나, 중악단이 잘 보존되어 있어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사지냈던 유일한 유적으로 역사적 의미가 있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31호신원사오층석탑 (新元寺五層石塔) -

계룡산의 산신제단(山神祭壇)인 중악단(中嶽壇) 남쪽에 서 있는 5층 석탑이다.

현재는 4층 지붕돌까지만 남아 있으나 원래는 2층 기단(基壇)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던 것으로 보인다.

아래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는데 이것은 목조건축의 기둥을 모방한 것이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고, 처마는 거의 수평이다.

석탑의 서쪽에는 배례석(拜禮石:탑 앞에 두어 예를 갖출 때 쓰는 돌)이 마련되어 있다.

중후한 느낌을 주는 석탑으로, 고려 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1975년 12월 탑의 해체·복원 공사 당시 탑신의 1층 몸돌에서 사리구와 함께 개원통보, 함원통보, 황송통보, 주둥이와 손잡이가 깨어진 자기주전자, 녹색 유리로 만든 목이 긴 병 등이 발견되었다.

(문화재청)

 

 

 

 

 

 

 

 

 

 

충남 공주 계룡산 신원사

2010. 0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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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김제 모악산 귀신사

전북 김제 모악산 귀신사

 

 

 

- 보물 제826호 김제 귀신사 대적광전 (金堤 歸信寺 大寂光殿) -

 

귀신사(歸信寺)는 신라 문무왕 16년(678) 의상대사가 세운 절로 8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전한다.

이 절에는 예스러운 맛이 배어 있는 건물과 연꽃무늬로 된 받침대, 동물 모양의 돌 등 많은 석물들을 볼 수 있다.

지혜의 빛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은 17세기 경에 다시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앞면 3칸 문에는 빗살무늬 창호를 달았고, 오른쪽과 왼쪽 끝칸인 퇴칸은 벽으로 만든 점이 특이하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62호 귀신사석탑 (歸信寺石塔) -

 

귀신사는 통일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절안에 이 3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바닥돌 위에 여러 장의 돌을 짜맞추어 기단(基壇)을 만들고 그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탑신의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선명하게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처마가 거의 평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얇고 넓은 지붕돌의 곡선미와 여러 개의 돌을 짜맞추어 조성된 수법 등으로 보아 백제 석탑 양식을 이어받은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64호 귀신사석수 (歸信寺石獸) -

 

귀신사 3층 석탑 앞쪽에 놓여 있는 것으로, 웅크리고 있는 사자상 등 위로 남근석(남성의 생식기 모양으로 다듬은 돌)이 놓여 있다.

사자상은 머리를 치켜들고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남근석은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랫부분은 대나무에서와 같은 옅은 마디를 두었다.

사찰 내에서 이러한 조각상을 찾아보기란 매우 드문 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두가지의 설이 제기되고 있다.

하나는 풍수지리상으로 이 터가 좋은 형상이 아니어서 이를 누르기 위해 세웠을 것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원래 남근석을 두는 사찰은 백제 왕실의 내원사찰(內願寺刹)뿐이므로, 이로 보아 이 절은 백제 때의 사찰일 것이라는 설이 그것이다.

만든 시기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과 사실적인 조각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다.

(문화재청)

 

 

전북 김제 모악산 귀신사

2010. 08.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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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72호 회사동석탑

시도유형문화재 제72호 회사동석탑 (檜寺洞石塔)

 

 

 

절터로 보이는 밭가운데 서 있는 탑으로 2층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탑신의 1층 몸돌을 괴는 곳에 굵은 2단의 괴임을 두어 윗돌을 받치고 있다.

탑신의 1층 몸돌 모서리에는 희미한 기둥 모양의 조각이 보인다.

지붕돌은 각 층 모두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는데, 1층 지붕돌이 약간 파손되긴 하였으나 중후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이 든다.

꼭대기에는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 장식)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으나 이것 역시 뒤에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기단부가 왜소하고 간략화되어 안정감을 잃었으나 140㎝라는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탑신부가 고르고 건실하다.

통일신라의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위로 탑신을 받치는 굵은 괴임을 둔 점, 지붕돌 밑면받침이 3단으로 줄어든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시도유형문화재 제72호 회사동석탑

전북 진안

2010. 0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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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 광덕산 광덕사

충남 천안 광덕산 광덕사

 

- 천연기념물 제398호천안 광덕사 호두나무 (天安 廣德寺 호두나무) -

 

호도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이며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 이남 지역에 주로 분포하며, 약 20m까지 자란다.

꽃은 4∼5월에 피고, 9월에 둥근 열매가 익는다.

이 호도나무는 나이가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8.2m이며,

지상 60㎝의 높이에서 두 개 줄기로 갈라져 가슴높이의 둘레가 각각 2.62m, 2.50m이다.

호도나무 3m 앞에는 이 나무의 전설과 관련된 ‘유청신 선생 호도나무 시식지’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약 700년 전인 고려 충렬왕 16년(1290) 9월에 영밀공 유청신 선생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임금의 수레를 모시고 돌아올 때 호도나무의 어린 나무와 열매를 가져와 어린 나무는 광덕사 안에 심고,

열매는 유청신 선생의 고향집 뜰 앞에 심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의 나무가 그 때 심은 것인지의 정확한 근거자료는

찾지 못하고 있다.

이곳 마을에서는 이것이 우리나라에 호도가 전래된 시초가 되었다 하여 이곳을 호도나무 시배지(처음 심은 곳)라 부르고 있다.

이 호도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서 문화적·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120호광덕사삼층석탑 (廣德寺三層石塔) -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의 석탑이다.

위층 기단과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고, 특히 탑신의 1층 몸돌에는 문모양 안에 자물쇠를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윗면에는 급한 경사가 흐르고, 네 귀퉁이는 위로 치켜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 : 엎어놓은 그릇 모양)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아래층 기단의 기둥 장식이 생략되고,

지붕돌 받침이 4단으로 줄어드는 점 등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 문화재자료 제246호광덕사 대웅전 (廣德寺 大雄殿) -

 

광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자장율사가 지었고 흥덕왕 때 진산조사가 다시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리기 전에는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에서 가장 큰 절 중 하나였다고 한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1983년에 완전히 해체하여 복원하였는데 처음보다 크게 세웠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에는 석가여래와 그의 제자인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불상을 모시고 있으며,

불상 뒤쪽에 영조 17년(1741)에 제작된 탱화가 있다.

(문화재청)

 

 

 

 

충남 천안 광덕산 광덕사

2010. 07.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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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 미륵산 심곡사


전북 익산 미륵산 심곡사






- 시도유형문화재 제192호 심곡사칠층석탑 (深谷寺七層石塔) -




신라 무염대사가 처음 지었다는 심곡사의 대웅전 앞마당에 자리한 칠층석탑으로서,

원래는 심곡사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가 이곳으로 옮겨진 것이라고 한다.

1층의 받침돌 위에 7층의 지붕돌을 올리고 맨 위에는 작은 연꽃봉우리 모양의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으로 전체적으로 높다란 느낌을 준다.

바닥돌 위에 있는 받침돌에는 엎어 놓은 모습의 연꽃문양과 위를 향한 모습의 연꽃문양이 아래 위로 각각 새겨져 있다.

탑몸돌과 지붕돌이 1매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탑몸돌에는 기둥 모양이 생략되었다.

지붕돌 받침은 3개로 표현되어 있고 경사가 완만한 지붕돌의 처마끝은 모서리에 가서 살짝 들어 올려져 백제탑의 전통을 이어오는 면이 보인다.

탑의 일부가 나중에 고쳐진 흔적이 있고 받침 부분과 탑몸 부분이 서로 조화되지 못한 점이 있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볼 때

고려시대 말∼조선시대 초기 석탑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받침부분에 나타난 고려시대 탑의 양식과 지붕돌 받침에 나타난 조선시대 탑의 양식, 지붕돌의 백제탑 양식을 모두 간직하고 있어

익산 지역에서 석탑 변화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문화재청)




















- 문화재자료 제87호 심곡사대웅전 (深谷寺大雄殿) -




심곡사는 신라 무염대사가 처음 지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대웅전은 조선 순조 19년(1819)에 세웠다고 한다.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안쪽 가운데에 석가모니불을 그 좌우에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는데, 불상의 수법과 양식으로 보아 조선시대 작품으로 추정한다.

그 외에 아미타여래후불탱화 2점, 신중탱화 1점, 현왕탱화 1점, 칠성탱화 1점과 목조나한상 1구가 있다.

(문화재청)















전북 익산 미륵산 심곡사

2010. 0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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