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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9.02.16 보물 제800호 공주 마곡사 영산전
  2. 2019.01.28 충남 공주 계룡산 청량사지
  3. 2019.01.26 시도유형문화재 제98호 공주가척리석탑
  4. 2019.01.21 충남 공주 계룡산 신원사
  5. 2019.01.14 충남 공주 계룡산 갑사
  6. 2019.01.13 충남 공주 태화산 마곡사

보물 제800호 공주 마곡사 영산전


보물 제800호 공주 마곡사 영산전 (公州 麻谷寺 靈山殿)




- 보물 제800호 공주 마곡사 영산전 (公州 麻谷寺 靈山殿) -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9년(640)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설과 신라의 승려 무선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세웠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신라말부터 고려 전기까지 폐사되었던 절로 고려 명종 2년(1172) 보조국사가 절을 다시 세웠으나 임진왜란 뒤 60년 동안 다시 폐사되었다.

훗날 조선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가 대웅전·영산전·대적광전 등을 고쳐 지었다고 한다.

영산전은 석가모니불과 일대기를 담은 팔상도를 모신 법당을 가리키는데 이 건물은 천불(千佛)을 모시고 있어 천불전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각순대사가 절을 다시 일으키면서(1651) 고쳐 지은 것으로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해탈문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앞쪽에 걸린 현판은 세조의 글씨라고 하며 안쪽은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몄다.

짜임새를 잘 갖추고 있는 조선시대의 건물로 건축 양식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







보물 제800호 공주 마곡사 영산전

충남 공주

2010. 0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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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계룡산 청량사지


충남 공주 계룡산 청량사지





- 보물 제1284호 공주 청량사지 오층석탑 (公州 淸凉寺址 五層石塔) -


청량사터에는 칠층석탑과 오층석탑 등 2기의 석탑이 남아 있는데, 이 두 탑을 가리켜 오누이탑 혹은 남매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옛날에 상원이라는 승려가 어려움에 처한 호랑이를 구해주자, 호랑이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처녀를 업어다 주었다.

상원은 처녀와 남매로서의 관계만을 유지하며 수도에 정진하였고, 처녀의 아버지가 그 갸륵한 뜻을 기려 두 탑을 세웠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 탑은 그 중 오층석탑으로,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얹은 모습이다.

바닥돌과 그 위에 둔 기단의 아랫돌은 각 4장의 돌로 짰다.

특이한 점은 기단의 가운데기둥을 별도의 돌로 끼워두었다는 것이다.

탑신의 각 층 지붕돌은 얇고 넓어서 균형과 안정감을 잃고 있다.

1·2층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2단인데, 모두 딴 돌을 끼워넣은 구조이다.

3·4층의 몸돌과 지붕돌은 따로 한 돌씩이며, 4층의 지붕돌받침은 아래층들과 달리 1단의 돌로 만들어져 있다.

4층 지붕돌 위에 5층 몸돌이 있으나, 지붕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둥근 머리장식이 남아 있다.

전체적인 수법으로 보아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보물 제224호)으로 이어지는 백제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일부 없어진 부분이 있지만 위로 올라가면서 과감하게 생략된 부분이 있고,

세부적인 조각수법이 일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시대에 와서 한 절에 각기 특징있는 두 가지 유형의 백제탑을 세운 것은 역사적, 미술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문화재청)





- 보물 제1285호 공주 청량사지 칠층석탑 (公州 淸凉寺址 七層石塔) -


청량사터에는 칠층석탑과 오층석탑 등 2기의 석탑이 남아 있는데, 이 두 탑을 가리켜 오누이탑 혹은 남매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옛날에 상원이라는 승려가 어려움에 처한 호랑이를 구해주자, 호랑이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처녀를 업어다 주었다.

상원은 처녀와 남매로서의 관계만을 유지하며 수도에 정진하였고, 처녀의 아버지는 그 갸륵한 뜻을 기려 두 탑을 세웠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 탑은 그 중 칠층석탑으로, 1단의 기단(基壇)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세워 두었으며, 전체적으로 폭이 좁고 길쭉한 형태이다.

기단은 각 면의 네 모서리마다 기둥을 딴 돌로 세운 점이 특이하다.

탑신은1층 몸돌의 한 면에 직사각형 모양의 감실(龕室: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새겼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1층이 2단이고 7층이 1단이며, 2·3·4층은 후대에 만든 것이라서 원래의 모습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2층 지붕돌 낙수면의 경사가 1층 보다 급하고, 2∼7층까지 몸돌이 줄어드는 비율이 그리 크지 않아 탑 전체의 안정감과 균형을 해치고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모두 없어지고 이를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전체적인 수법으로 보아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으로 이어지는 석탑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일부 없어진 부분이 있지만, 위로 올라가면서 과감하게 생략된 부분이 있고,

세부적인 조각수법이 일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

























충남 공주 계룡산 청량사지

2009.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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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98호 공주가척리석탑


시도유형문화재 제98호 공주가척리석탑 (公州加尺里石塔)



청림사의 절터로 전하는 곳에 이 탑이 서 있다.

석탑은 전체의 무게를 받치는 기단(基壇)을 2층으로 쌓고,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는데, 원래는 5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규모는 비교적 작은 크기이며, 각 부분이 일부 깨져 있다.

기단은 아래층과 윗층의 맨윗돌이 탑신에 비해 지나치게 커보여 비례가 잘 맞지 않는다.

탑신의 각 지붕돌은 얇고 작으며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다.

낙수면은 느린 경사를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살짝 솟아올라 곡선미를 보여준다.

길고 가는 탑신, 지나치게 넓은 기단 등 균형미는 없지만 이 지방만의 독특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










시도유형문화재 제98호 공주가척리석탑

충남 공주

2009. 0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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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계룡산 신원사


충남 공주 계룡산 신원사



- 시도유형문화재 제80호 신원사대웅전 (新元寺大雄殿) -


신원사는 계룡산 기슭에 있는 절로 백제 의자왕 11년(651)에 보덕이 처음 지었다고 전한다.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여러 번 다시 지어졌고, 지금의 대웅전 건물은 조선 고종 13년(1876)에 보연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처마의 끝을 살짝 올려 우아한 멋을 나타내었다.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 건물이며, 연꽃을 조각하여 장식하였고 매우 간략한 양식으로 되어있다.

내부에는 아미타여래를 주존으로 하여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불상 위에 닫집을 설치하여 장엄하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31호 신원사오층석탑 (新元寺五層石塔) -


계룡산의 산신제단(山神祭壇)인 중악단(中嶽壇) 남쪽에 서 있는 5층 석탑이다.

현재는 4층 지붕돌까지만 남아 있으나 원래는 2층 기단(基壇)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던 것으로 보인다.

아래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는데 이것은 목조건축의 기둥을 모방한 것이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고, 처마는 거의 수평이다.

석탑의 서쪽에는 배례석(拜禮石:탑 앞에 두어 예를 갖출 때 쓰는 돌)이 마련되어 있다.

중후한 느낌을 주는 석탑으로, 고려 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1975년 12월 탑의 해체·복원 공사 당시 탑신의 1층 몸돌에서 사리구와 함께 개원통보, 함원통보, 황송통보, 주둥이와 손잡이가 깨어진 자기주전자,

녹색 유리로 만든 목이 긴 병 등이 발견되었다.

(문화재청)






- 보물 제1293호 공주 계룡산 중악단 (公州 鷄龍山 中嶽壇) -


중악단은 국가에서 계룡산신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마련한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계룡산은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왔으며, 신라 때 5악의 하나로 제사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북쪽의 묘향산을 상악으로,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으로, 중앙의 계룡산을 중악으로 하여 단을 모시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 3년(1394)에 처음 제사를 지냈다고 전하며, 효종 2년(1651)에 제단이 폐지되었다.

그 후 고종 16년(1879)에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짓고 중악단이라 하였다.

구릉지에 동북·서남을 중심축으로 하여 대문간채, 중문간채, 중악단을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하고 둘레에는 담장을 둘렀다.

건물배치와 공간구성에 단묘(壇廟)건축의 격식과 기법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중악단의 현판은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1846∼1917)가 쓴 것이라고 한다.

내부 중앙 뒤쪽에 단을 마련하고, 단 위에 나무상자를 설치하여 그 안에 계룡산신의 신위와 영정을 모셔 두었다.

1.5m의 높은 돌기단 위에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조선 후기의 특징적인 수법으로 조각·장식하여 화려하고 위엄있게 하였다.

또한 각 지붕 위에는 각각 7개씩 조각상을 배치하여 궁궐의 전각이나 문루 또는 도성의 문루에서 사용하던 기법을 쓴 점도 특이하다.

조선시대 상악단과 하악단은 없어져서 그 유적 내용을 알 수 없으나,

중악단이 잘 보존되어 있어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사지냈던 유일한 유적으로 역사적 의미가 있다.

(문화재청)









충남 공주 계룡산 신원사

2009. 0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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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계룡산 갑사


충남 공주 계룡산 갑사



계룡산 갑사



- 시도유형문화재 제95호 갑사강당 (甲寺講堂) -


갑사는 계룡산 기슭에 있는 삼국시대의 사찰로, 백제시대에 아도화상이 처음 지었다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 

통일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크게 다시 지으면서 신라화엄 10찰의 하나가 되었다.

해탈문과 대웅전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강당은 승려들이 법문을 강론하던 건물로 정유재란(1597)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뒤로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의 옆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배흘림의 기둥 위에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를 짰는데,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단청은 완전히 퇴색되어 무늬의 흔적만 남아 있으며, 문짝은 많이 변형되어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절도사 홍재의가 쓴 ‘계룡갑사(鷄龍甲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전체적으로 기교를 부리지 않은 조선시대 후기의 웅장한 건축물이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105호 갑사대웅전 (甲寺大雄殿) -


갑사는 계룡산 아래에 있는 절로 백제 구이신왕 1년(420년)에 아도화상이 지었다는 설과 556년에 혜명이 지었다는 설 등이 있는데 확실하지 않다. 

679년에 의상이 수리해서 화엄종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신라 화엄 10찰의 하나가 되었다. 

859년·889년에 새로 지었으나 정유재란(1597)으로 인해 건물이 모두 불타 버린 것을 선조 37년(1604)에 다시 지었다.

갑사 대웅전은 절의 중심에 있는 법당으로 원래는 현재 대적전이 있는 근처에 있던 것으로 보이며, 다시 지을 때 이곳에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1층이며, 옆면이 사람인(人)자 모양으로 가장 단순한 맞배지붕 건물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가운데 3칸은 기둥 간격을 양 끝칸 보다 넓게 잡아 가운데는 공포를 2개씩, 끝칸에는 1개씩 배치하였다. 

내부는 우물천장으로 되어있고, 불단을 만들어 석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그 위에는 화려한 닫집을 설치하였다.

갑사 대웅전은 조선시대 중기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문화재청)







- 보물 제257호 공주 갑사 승탑 (公州 甲寺 僧塔) -


갑사 뒤편 계룡산에 쓰러져 있었던 것을 1917년 대적전 앞으로 옮겨 세웠다.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진 모습이며 3단의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지붕돌을 얹은 형태이다.

높직한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은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나뉘어지는데 특이하게도 아래층이 넓고 위층으로 갈수록 차츰 줄어든다. 

아래받침돌에는 사자·구름·용을 대담하게 조각하였으며, 거의 원에 가까운 가운데받침에는 각 귀퉁이마다 꽃 모양의 장식이 튀어나와 있고, 

그 사이에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을 새겨 놓았다. 

탑신을 받치는 두툼한 윗받침돌에는 연꽃을 둘러 새겼다.

탑 몸돌 4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을 새겨 놓았고, 다른 4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기왓골을 표현하는 등 지붕 모양을 정교하게 모방하고 있다.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으며, 후에 새로 만든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올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조각이 힘차고 웅대하나, 윗부분으로 갈수록 조각기법이 약해졌다. 

특히 지붕돌이 지나치게 작아져 전체적인 안정감과 균형을 잃고 있다. 

기단부의 조각은 고려시대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전체에 조각된 각종 무늬와 기법 등은 고려시대 승탑들 중에서도 우수작으로 손꼽을 만하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106호 갑사대적전 (甲寺大寂殿) -


갑사는 계룡산 아래에 있는 절로 백제 구이신왕 1년(420)에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설과 556년에 혜명이 지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679년에 의상이 보수하여 화엄종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신라 화엄10찰의 하나가 되었다. 

859년·889년에 새로 지었으나 정유재란(1597)으로 인해 건물이 불타 버린 것을 선조 37년(1604)에 다시 지었다.

갑사 대적전은 대적광전이라고도 하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삼신불(석가모니·아미타불·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원래의 금당지 옆에 있던 건물로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가장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가운데 칸은 공포가 2개이며, 양 끝칸은 1개의 공포로 이루어졌다. 

내부에는 불단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석가모니불 위에 천장을 한단 올림으로써 닫집의 효과를 나타내었다.

(문화재청)





- 보물 제256호 공주 갑사 철당간 (公州 甲寺 鐵幢竿) -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갑사(甲寺) 동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이 당간은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네 면에 구름무늬를 새긴 기단(基壇) 위로 철당간을 높게 세우고 양 옆에 당간지주를 세워 지탱하였다. 

당간은 24개의 철통을 연결한 것인데 원래는 28개였으나 고종 30년(1893) 벼락을 맞아 4개가 없어졌다고 한다. 

당간을 지탱하는 두 개의 지주는 동·서로 마주 서 있으며 꾸밈이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기둥머리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안쪽에 구멍을 뚫어서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있다.

기둥머리의 곡선과 기단부의 단순한 조각이 잘 어우러져 소박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통일신라 전기인 문무왕 20년(680)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고, 양식상으로 보아 통일신라 중기의 양식을 갖춘 것으로 생각된다.

(문화재청)







충남 공주 계룡산 갑사

2009. 0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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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태화산 마곡사


충남 공주 태화산 마곡사



- 문화재자료 제66호 마곡사해탈문 (麻谷寺解脫門)-


마곡사는 백제 무왕 41년(640)에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전한다. 

절 경내에는 응진전을 비롯하여 대웅전, 영산전, 대광보전, 홍성루 등 많은 건물이 남아 있다.

해탈문은 마곡사의 정문으로 이 문을 지나면 속세를 벗어나 불교 세계에 들어가게 되고, 해탈을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한다. 

중앙 통로 양쪽 편에 금강역사상과 문수동자상 등을 모시고 있다.

(문화재청)




보물 제800호 공주 마곡사 영산전 (公州 麻谷寺 靈山殿) -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9년(640)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설과 신라의 승려 무선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세웠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신라말부터 고려 전기까지 폐사되었던 절로 고려 명종 2년(1172) 보조국사가 절을 다시 세웠으나 임진왜란 뒤 60년 동안 다시 폐사되었다. 

훗날 조선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가 대웅전·영산전·대적광전 등을 고쳐 지었다고 한다.

영산전은 석가모니불과 일대기를 담은 팔상도를 모신 법당을 가리키는데 이 건물은 천불(千佛)을 모시고 있어 천불전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각순대사가 절을 다시 일으키면서(1651) 고쳐 지은 것으로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해탈문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앞쪽에 걸린 현판은 세조의 글씨라고 하며 안쪽은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몄다.

짜임새를 잘 갖추고 있는 조선시대의 건물로 건축 양식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







- 보물 제799호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公州 麻谷寺 五層石塔) -


마곡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으며, 구한말에는 독립운동가 김구와도 인연이 깊었던 사찰이다.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던 일본인 장교를 죽인 후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이 절에 숨어서 승려로 지냈는데, 

지금도 대광보전 앞쪽에는 김구가 심었다는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절마당에 우뚝 서 있는 이 탑은 탑 전체의 무게를 받쳐주는 기단(基壇)을 2단으로 쌓고, 그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올린 모습이다.

탑신의 몸돌에 부처, 보살 등을 조각해 놓았고, 지붕돌은 네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보이는데, 현재 5층 지붕돌에만 1개의 풍경이 남아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이 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으로, 중국 원나라의 라마탑과 그 모습이 비슷하다.

길쭉한 감이 있어 안정감은 적으나 당당한 풍채로 버티고 서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머리장식의 독특한 모습으로 보아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던 고려 후기 즈음으로 여겨진다. 

즉 고려 후기 당시 원나라와의 문화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라마교 계통의 문화도 고려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 탑은 그 문화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탑 안의 보물들을 거의 도난당하였으나, 1972년 해체하여 수리하는 과정에서 동으로 만든 향로와 문고리가 발견되었다.

(문화재청)







- 보물 제802호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 (公州 麻谷寺 大光寶殿) -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9년(640)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설과 신라의 승려 무선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세웠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신라말부터 고려 전기까지 폐사되었던 절로 고려 명종 2년(1172) 보조국사가 절을 다시 세웠으나 임진왜란 뒤 60년 동안 다시 폐사되었다. 

훗날 조선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가 대웅전·영산전·대적광전 등을 고쳐 지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마곡사의 중심 법당으로 해탈문·천왕문과 일직선으로 놓여 있다.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건물로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불에 타버렸던 것을 조선 순조 13년(1813)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앞면 5칸에는 3짝씩 문을 달았는데 문살은 꽃 모양을 섞은 조각으로 장식하였고 가운데 칸 기둥 위로 용 머리를 조각해 놓았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몄고, 불단은 서쪽으로 마련하였는데 불단 위에는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닫집을 정교하게 꾸며 달았다.

안팎으로 구성과 장식이 풍부하고 건축 수법이 독특한 건물로 조선 후기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















- 보물 제801호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公州 麻谷寺 大雄寶殿)-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9년(640)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설과 신라의 승려 무선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세웠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신라말부터 고려 전기까지 폐사되었던 절로 고려 명종 2년(1172) 보조국사가 절을 다시 세웠으나 임진왜란 뒤 60년 동안 다시 폐사되었다. 

훗날 조선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가 대웅전·영산전·대적광전 등을 고쳐 지었다고 한다.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을 가리키는데 이 법당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여래불·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 각순대사가 절을 다시 일으킬 때(1651) 고쳐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규모는 1층이 앞면 5칸·옆면 4칸, 2층이 앞면 3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 위에 연꽃을 조각해 놓아 조선 중기 이후의 장식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건물 2층에 걸려 있는 현판은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라고 한다. 

 건물 안쪽은 우물 정(井)자 형태로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천장을 2층 대들보와 연결하여 만들었고 마루도 널찍해 공간구성이 시원해 보인다.

조선 중기 2층 건물로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








충남 공주 태화산 마곡사

2009. 08.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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