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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9.02.27 문화재자료 제88호 금암리오층석탑
  2. 2019.02.20 충남 부여 만수산 무량사 - 부처님 오신 날
  3. 2019.02.16 충남 부여 만수산 무량사
  4. 2019.02.10 문화재자료 제89호 화성리 오층석탑
  5. 2019.02.10 시도유형문화재 제29호 부여홍량리오층석탑, 제140호 부여홍산상천리마애불입상
  6. 2019.01.12 충남 부여 정림사지

문화재자료 제88호 금암리오층석탑


문화재자료 제88호 금암리오층석탑 (金岩里五層石塔)



금새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집터를 다지던 중 탑의 부분석재가 발견되어 복원해 놓은 것이다.

마을 이름은 ‘금사(金寺)’라는 절이름에서 따온 것이라 하며, 공사 당시 금동으로 만든 불상의 일부분이 함께 발견되어 이 일대가 절터였음을 뒷받침해준다.

탑은 동그란 판돌 위로 탑의 몸돌이 하나 놓여 있고, 그 위로 5개의 지붕돌을 차례로 쌓아 올린 모습이다.

둥근 판돌이 이 탑의 기단(基壇)역할을 하는 듯 하나, 원래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나만 남아있는 탑신의 몸돌은 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각층에 3단의 받침이 있다.

특히 5층 옥개석의 받침은 3단이긴 하지만 가장 하단은 굉장히 퇴화되어 있는 상태이다.

없어진 부분들이 많아 원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으며, 다른 탑에 비해 규모도 작고 불완전한 모습이다.

지붕돌의 밑받침을 3단으로 두거나, 3층 이상은 전혀 두지 않는 등 불규칙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 고려시대에 세운 탑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











문화재자료 제88호 금암리오층석탑

충남 부여

2010. 06.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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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 만수산 무량사 - 부처님 오신 날


충남 부여 만수산 무량사 - 부처님 오신 날




























충남 부여 만수산 무량사 - 부처님 오신 날

2010. 0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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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 만수산 무량사


충남 부여 만수산 무량사









- 시도유형문화재 제57호 무량사당간지주 (無量寺幢竿支柱) -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는 이곳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걸어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의 양쪽에 서서 이를 지탱해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드물게 당간이 있으나 대부분 두 기둥만 남아 있다.

이 당간지주는 무량사 천왕문 동쪽에 남아 있는 것으로, 두 개의 길다란 돌기둥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기둥 끝은 안쪽면에서 바깥쪽으로 둥글게 다듬었고, 앞뒷면의 가장자리에는 테두리 선을 돌렸으며, 양 옆면 가운데에는 세로로 돌출된 띠를 새겼다.

마주보는 기둥의 안쪽면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2개의 구멍을 각각 뚫어 놓았다.

돌기둥 사이에는 당간 받침돌이 끼워져 있는데, 그 중앙에 당간을 받는 기둥자리를 파고 그 주위를 둥글고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아무런 장식이 없는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통일신라시대에서 굳어진 제작방식을 따라 고려 전기에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











- 보물 제185호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扶餘 無量寺 五層石塔) -


무량사 극락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웅장한 모습의 5층 석탑이다.

탑을 받치는 기단(基壇)은 1단으로, 둥글게 다듬은 두툼한 석재를 포함한 층단으로 괴임을 만들고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세웠다.

탑신(塔身)은 지붕돌과 몸돌을 한 층으로 하여 5층을 이루고 있다.

네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있는 몸돌은 지붕돌에 비하여 높이가 낮은 편이나 전체적으로 알맞은 비례를 보이고 있어 우아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붕돌은 얇고 넓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다.

지붕돌과 밑의 받침은 딴 돌로 구성되어 있고 받침의 수는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낮은 받침돌 위로 머리장식의 일부가 남아있다.

백제와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조화시켜 만든 고려 전기의 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백제의 옛 땅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백제의 기법이 이어졌고 통일신라의 시대적인 양식도 계승되었다.

해체공사를 할 때 탑신의 1층 몸돌에서 금동제 아미타여래좌상, 지장보살상, 관음보살상의 삼존상이 나왔고,

3층에서는 금동보살상, 5층에서는 사리구(舍利具)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문화재청)











- 보물 제356호 부여 무량사 극락전 (扶餘 無量寺 極樂殿) -


무량사는 신라 말에 범일이 세워 여러 차례 공사를 거쳤으나 자세한 연대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신라말 고승 무염대사가 일시 머물렀고, 고려시대에 크게 다시 지었으며, 김시습이 이 절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 건물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흔치않는 2층 불전으로 무량사의 중심 건물이다.

외관상으로는 2층이지만 내부에서는 아래·위층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트여 있다.

아래층 평면은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기둥 사이를 나누어 놓았는데 기둥은 매우 높은 것을 사용하였다.

위층은 아래층에 세운 높은기둥이 그대로 연장되어 4면의 벽면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원래는 그 얼마되지 않는 낮은 벽면에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창문을 설치했었는데 지금은 나무판 벽으로 막아놓았다.

아미타여래삼존상을 모시고 있는 이 불전은 조선 중기의 양식적 특징을 잘 나타낸 불교 건축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우수한 건물이다.

(문화재청)





- 보물 제233호 부여 무량사 석등 (扶餘 無量寺 石燈) -


무량사 법당 앞뜰에 세워져 있는 8각 석등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네모난 바닥돌 위로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아래받침돌은 연꽃 8잎이 조각되어 있고, 가운데받침은 기둥으로 길게 세워져있으며 그 위로 연꽃이 새겨진 윗받침돌이 놓여 있다.

화사석은 8면 중 4면은 넓고, 4면은 좁은 형태로, 넓은 4면에 창이 뚫려 있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의 치켜올림과 처마의 경사가 잘 어울려 경쾌한 모습을 보여 주며, 꼭대기에는 자그만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솟아 있다.

전체적으로 지붕돌이 약간 큰 감이 있으나 경쾌한 곡선으로 인해 무거움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래·위받침돌의 연꽃조각은 통일신라 전성기의 화려한 연꽃무늬와는 차이가 있고, 각 부분이 형식적으로 흐른 감이 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인 10세기경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충남 부여 만수산 무량사

2010. 0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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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89호 화성리 오층석탑


문화재자료 제89호 화성리오층석탑 (花城里五層石塔)



화암사라는 작은 암자의 앞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옛 절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암자를 지을 때 함께 복원해 놓은 이 탑은 많은 부분들이 없어져 원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은 맨 아래에 기단(基壇)의 일부로 보이는 넓적한 사각돌을 두고 그 위로 탑신(塔身)의 1층 몸돌을 올린 후, 4개의 지붕돌을 포개어 놓은 모습인데,

주변에 지붕돌이 하나 더 남아있어, 원래는 5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남아 있는 탑신의 1층 몸돌은 ⅓정도가 깎여 있어 탑 전체가 무너질 듯한 위험을 안고 있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처마는 직선을 유지하다 양 끝에서 서서히 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붕돌의 모습이나 탑의 전체적인 구성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세운 탑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













문화재자료 제89호 화성리 오층석탑

충남 부여

2010. 0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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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29호 부여홍량리오층석탑, 제140호 부여홍산상천리마애불입상


시도유형문화재 제29호 부여홍량리오층석탑 (扶餘鴻良里五層石塔), 

시도유형문화재 제140호 부여홍산상천리마애불입상 (扶餘鴻山上川里磨崖佛立像)



시도유형문화재 제29호 부여홍량리오층석탑 (扶餘鴻良里五層石塔) -



안량사(安良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에 남아 있는 5층 석탑이다.

현재는 절이 있었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다만 탑 주변으로 기와·자기조각, 토기 등이 흩어져 있을 뿐이다.

탑의 실제기단의 하부는 확인되지 않지만 지대석이 마련되어 있고 상하단의 기단석이 마련되었다.

하단은 여러매의 돌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일부 유실이 된 상태이고 상단은 두장의 넓은 돌로 되어 있다.

그러나 중심축 침하로 인해 상단의 기단은 그나마 기울어진 형상이다.

그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탑신부의 1층 몸돌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2층 몸돌부터는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새겨진 3단의 받침이 또렷하고, 경사면이 완만하며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 남아 있는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는 나중에 보수하여 얹은 것이다.

기단부가 약간 허술하긴 하나 단아한 느낌이 드는 고려시대 탑으로,

탑신의 1층 몸돌에 비해 2층 이상이 갑자기 낮아진 것이나 지붕돌에서 보여주는 비례 등에서 백제 석탑의 전통이 느껴진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140호 부여홍산상천리마애불입상 (扶餘鴻山上川里磨崖佛立像)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태봉산 정상의 북쪽 산중턱 암벽에 조각한 마애불이다.

이 불상은 전체높이 6m로 한면을 택하여 조각하였는데 앞쪽이 10˚정도 기울어져 있다.

민머리이며 그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커다랗게 솟아 있다.

둥글 넓적한 얼굴에 눈은 가늘게 감았고 입술은 두터우며 귀는 길게 늘어졌다.

목에는 3줄로 새겨진 삼도(三道)가 있는데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왼쪽 어깨에 걸친 옷자락에는 나비모양으로 묶은 띠매듭이 있어 매우 독특하다.

몸체에 비하여 얼굴이 크고 우람한 모습이며, 왼손은 손바닥이 보이도록 가슴에 두었다.

민간 신앙의 대상이었던 듯한 이 불상은 부여지방에서는 드물게 보이는 것이다.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시도유형문화재 제29호 부여 홍량리 오층석탑, 제140호 부여 홍산 상천리 마애불입상

2010. 0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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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 정림사지


충남 부여 정림사지



- 국보 제9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扶餘 定林寺址 五層石塔) -


부여 정림사터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좁고 낮은 1단의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평제탑’이라고 잘못 불리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기단은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돌을 끼워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놓았는데,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를 볼록하게 표현하는 목조건물의 배흘림기법을 이용하였다. 

얇고 넓은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부드럽게 들려져 단아한 자태를 보여준다.

좁고 얕은 1단의 기단과 배흘림기법의 기둥표현, 얇고 넓은 지붕돌의 형태 등은 목조건물의 형식을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단순한 모방이 아닌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여주며, 전체의 형태가 매우 장중하고 아름답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과 함께 2기만 남아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를 통해 격조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문화재청)














- 보물 제108호 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 (扶餘 定林寺址 石造如來坐像) -


충청남도 부여의 정림사지에 남아 있는 석조불상으로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와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다. 

정림사는 6세기 중엽에 처음 창건되어 백제 멸망 때까지 번창하였던 사찰로 고려시대에 다시 번창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석불상은 고려 때의 번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의 머리와 보관은 제작 당시의 것이 아니라, 후대에 다시 만들어 얹은 것으로 보인다. 

신체는 극심한 파괴와 마멸로 형체만 겨우 남아 있어 세부적인 양식과 수법을 알아보기 어렵지만, 어깨가 밋밋하게 내려와 왜소한 몸집을 보여준다. 

좁아진 어깨와 가슴으로 올라간 왼손의 표현으로 보아 왼손 검지 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쥔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상대·중대·하대로 이루어진 8각으로 불상보다 공들여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상대는 연꽃이 활작 핀 모양이며, 중대의 8각 받침돌은 각 면에 큼직한 눈모양을 새겼다. 

하대에는 연꽃이 엎어진 모양과 안상을 3중으로 중첩되게 표현했다.

현재 불상이 자리잡고 있는 위치가 백제시대 정림사지의 강당 자리로 이곳에서 발견된 명문기와를 통해 

이 작품은 고려시대에 절을 고쳐 지을때 세운 본존불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충남 부여 정림사지

2009. 0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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