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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9.02.15 문화재자료 제129호 수암리 삼층석탑
  2. 2019.02.15 문화재자료 제131호 지석리 삼층석탑
  3. 2019.02.14 문화재자료 제130호 봉남리 삼층석탑
  4. 2019.02.14 문화재자료 제128호 지현리 삼층석탑
  5. 2019.01.25 보물 제224호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
  6. 2018.08.29 보물 제224호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

문화재자료 제129호 수암리 삼층석탑


문화재자료 제129호 수암리삼층석탑 (水岩里三層石塔)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탑 전체를 하나의 돌로 조성한 것이 특이하다.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치켜올라갔고,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연꽃무늬를 두른 복발(覆鉢:엎어 놓은 그릇모양)을 올려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조선 후기 이 지방을 관할하던 한 좌수(座首)가 매년 풍년을 기원하고자 이 탑을 세웠다고 한다.

(문화재청)













문화재자료 제129호 수암리 삼층석탑

충남 서천

2010. 0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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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131호 지석리 삼층석탑


문화재자료 제131호 지석리삼층석탑 (支石里三層石塔)



지석리에 있는 3층 석탑으로,

원래 마을 뒷산에 있었는데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이 가져가려고 이곳까지 운반해 왔다가 주민들의 반발로 가져가지 못하여 이곳에 자리잡게 되었다.

형태는 바닥돌 위에 1층 기단(基壇)을 세우고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에는 3개의 안상(眼象)을 얕게 조각하였고,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을 본 뜬 조각을 두었다.

탑신의 1층 몸돌에 비해 2층 이상의 몸돌이 급격히 줄어들어 지붕돌보다도 높이가 낮아졌다.

기단에 새긴 안상조각이나 간략해진 탑의 구성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문화재자료 제131호 지석리 삼층석탑

충남 서천

2010. 0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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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130호 봉남리 삼층석탑


문화재자료 제130호 봉남리삼층석탑 (峰南里三層石塔)



봉남리에 자리하고 있는 3층 석탑이다.

기단(基壇)과 탑신(塔身)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고, 특히 1층 몸돌에는 문모양과 문고리를 조각해 두었다.

고려시대에 만든 탑으로 짐작되며, 전해오는 말에는 탑의 뒷편에 사찰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절터만 남아있다.

탑 속에서 발견된 귀금속은 일제 시대 때 일본군이 훔쳐가 남아있지 않다.

(문화재청)













문화재자료 제130호 봉남리 삼층석탑

충남 서천

2010. 0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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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128호 지현리 삼층석탑


문화재자료 제128호 지현리삼층석탑 (芝峴里三層石塔)



지방 관아의 뜰에 남아 있던 것으로 전하는 3층 석탑이다.

탑신(塔身)의 1층 몸돌 남쪽면에 새긴 기록에는 고려 성종 10년(991) 한산지방의 호족이 나라를 지키기 위한 뜻을 담아 이 탑을 세웠다고 적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재자료 제128호 지현리 삼층석탑

충남 서천

2010. 0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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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224호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


보물 제224호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 (舒川 城北里 五層石塔)



지방적인 특색이 강했던 고려시대의 탑으로, 옛 백제 영토에 지어진 다른 탑들처럼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의 양식을 모방하였는데,

특히 가장 충실히 따르고 있다.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基壇)은 목조건축의 기둥과 벽과 같이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 사이를 판판한 돌을 세워 막았다.

탑신(塔身)은 몸돌을 기단에서처럼 기둥과 벽을 따로 마련하여 세워 놓았는데, 각 면의 모습이 위는 좁고 아래는 넓어 사다리꼴을 하고 있다.

몸돌 위로는 지붕돌을 얹기 전에 지붕받침을 2단 올려놓았는데 그 모습이 정림사지5층석탑을 떠올리게 한다.

1층 몸돌의 각 기둥들이 아래로는 기단을 누르고, 위로는 지붕받침을 이고 있어, 마치 신을 신고 관을 쓰고 있는 모양이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느린 경사를 이룬다. 경사면의 아래는 수평을 이루다가 양 끝에서 위를 받치듯 살짝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형태의 크고 작은 돌이 겹쳐 얹혀져 있고, 그 위로 네모난 돌이 놓여있다.

전체적인 세부양식이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따르려 힘을 기울인 흔적은 보이나, 몸돌에 비해 지나치게 큰 지붕돌,

1층에 비해 갑자기 줄어든 2층 이상의 몸돌 등에 의해 균형이 깨지고 있다.

하지만, 백제계 석탑양식의 지방분포에 따라 그 전파 경로를 알아내는 데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문화재청)

* 국보 제9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 https://hscphoto.tistory.com/2155

















보물 제224호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

충남 서천

2009. 0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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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224호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

 

- 보물 제224호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 (舒川 城北里 五層石塔) - 

 

 

 

 

 

 

 

지방적인 특색이 강했던 고려시대의 탑으로, 옛 백제 영토에 지어진 다른 탑들처럼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의 양식을 모방하였는데,

특히 가장 충실히 따르고 있다.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基壇)은 목조건축의 기둥과 벽과 같이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 사이를 판판한 돌을 세워 막았다.

탑신(塔身)은 몸돌을 기단에서처럼 기둥과 벽을 따로 마련하여 세워 놓았는데, 각 면의 모습이 위는 좁고 아래는 넓어 사다리꼴을 하고 있다.

몸돌 위로는 지붕돌을 얹기 전에 지붕받침을 2단 올려놓았는데 그 모습이 정림사지5층석탑을 떠올리게 한다.

1층 몸돌의 각 기둥들이 아래로는 기단을 누르고, 위로는 지붕받침을 이고 있어, 마치 신을 신고 관을 쓰고 있는 모양이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느린 경사를 이룬다.

경사면의 아래는 수평을 이루다가 양 끝에서 위를 받치듯 살짝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형태의 크고 작은 돌이 겹쳐 얹혀져 있고, 그 위로 네모난 돌이 놓여있다.

전체적인 세부양식이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따르려 힘을 기울인 흔적은 보이나, 몸돌에 비해 지나치게 큰 지붕돌,

1층에 비해 갑자기 줄어든 2층 이상의 몸돌 등에 의해 균형이 깨지고 있다.

하지만, 백제계 석탑양식의 지방분포에 따라 그 전파 경로를 알아내는 데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문화재청)

  

 

 

 

 

보물 제224호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

2008. 0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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