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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9.05.11 시도유형문화재 제27호 도림사지삼층석탑
  2. 2019.02.14 문화재자료 제147호 계봉사 오층석탑
  3. 2019.02.13 보물 제18호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
  4. 2019.02.11 문화재자료 제148호 청양삼층석탑, 보물 제197호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
  5. 2019.02.10 시도유형문화재 제56호 정산 남천리석탑
  6. 2019.02.10 문화재자료 제147호 계봉사 오층석탑
  7. 2019.01.13 보물 제18호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
  8. 2019.01.10 충남 청양 칠갑산 장곡사

시도유형문화재 제27호 도림사지삼층석탑

 

- 시도유형문화재 제27호 도림사지삼층석탑 (道林寺址三層石塔) -

 

 

 

 

도림마을 뒷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주변에서 ‘도림사(道林寺) ’라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이 터가 도림사의 옛 터임을 알게 되었다.

도림사는 고려시대 이전에 창건되어 조선 중기까지 계속되었던 사찰로 추측되고 있는데, 화재로 모두 불에 타고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탑은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는 기단(基壇)을 2층으로 쌓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위층 기단은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조각했는데 제법 뚜렷한 형상이다.

탑신부는 각 층의 몸돌이 적당히 줄어들고 있어 깔끔한 균형을 이룬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3단씩 두었으며,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는 경사면은 네 귀퉁이에서 힘차게 위로 들려 있다.

전체적으로 아담하면서도 아름다운 비례를 보이고 있으며, 고려시대 석탑의 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1973년경 탑을 보수할 때 네모난 사리장치를 발견하여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문화재청)

 

 

 

 

 

 

 

 

 

 

 

 

 

 

 

 

 

 

 

 

 

 

 

 

 

 

 

 

 

시도유형문화재 제27호 도림사지 삼층석탑

2010. 0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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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147호 계봉사 오층석탑


문화재자료 제147호 계봉사오층석탑 (鷄鳳寺五層石塔)



계봉사의 정원 가운데 서 있는 5층 석탑이다.

계봉사는 백제 성왕 때 지었다고도 하며, 통일신라 문성왕 때 지어졌다고 하나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 헌종 때 불에 타 버린 것을, 옛이름을 따서 작은 규모로 새로이 짓고 정원을 꾸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5층 석탑과 물을 받는 돌구유만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위층 기단의 앞면에는 탑의 이름을 새기고, 탑신의 각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 떠 새겼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1층부터 4층까지 4단이다가 5층에 이르러 3단으로 줄었다.

지붕돌의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높게 치켜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장식) 과 앙화(仰花:활짝 핀 연꽃무늬 장식) 등의 머리장식을 갖추고 있다.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지붕돌 받침이 4∼3단으로 줄어드는 양식상의 변화를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 작품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























문화재자료 제147호 계봉사 오층석탑

충남 청양

2010. 05.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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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8호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


보물 제18호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 (靑陽 西亭里 九層石塔)




공주에서 청양쪽으로 23㎞ 떨어진 벌판 가운데에 서 있는 탑으로,

부근에 고려시대 백곡사(白谷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주위에 기와조각 등이 흩어져 있을 뿐 다른 유물들은 찾아볼 수 없다.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9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眼象)을 돌려 새겼는데, 바닥선이 꽃모양으로 솟아올라 있어 고려시대의 양식상 특징을 드러낸다.

윗층 기단에는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그 위로 알맞은 두께의 돌을 덮어 안정된 모양새를 띠고 있다.

탑신 1층이 큰 점이 특징적인데, 2층부터는 높이가 뚜렷하게 줄어들지만 넓이는 크게 좁아지지 않아 우아한 느낌이다.

지붕돌은 아랫면에 1층은 5단, 나머지 층은 3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네 귀퉁이가 약간씩 치켜올라가 있다.

전체적으로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석탑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9층이나 되는 층수로 인해 형태가 매우 높아져 안정감이 부족하다.

각 부분의 세부적 조각양식이나 기단의 안상을 새긴 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보물 제18호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

충남 청양

2010. 05.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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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148호 청양삼층석탑, 보물 제197호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


문화재자료 제148호 청양삼층석탑, 보물 제197호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



- 문화재자료 제148호 청양삼층석탑 (靑陽三層石塔) -


청양삼존불입상(보물 제97호)과 함께 ‘일명사’라는 옛 절터에 있던 탑으로, 군청 뒤편에 옮겼다가 1961년 지금의 장소로 옮겨 세웠다.

형태는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간결하게 짜여 있고, 탑신은 각 층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한 돌로 만들어 쌓아 올렸다.

탑신의 1층 몸돌 앞면에는 문짝모양을 본 떠 새겼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앙화(仰花:활짝 핀 연꽃모양 장식) 등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 보물 제197호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 (靑陽 邑內里 石造如來三尊立像) -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따로 가지고 있는 독립된 불상이 삼존불(三尊佛)을 이루고 있다.

본존불은 당당한 체구의 불상으로 머리에는 큼직한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있고, 직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에서는 강인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어깨는 넓고 당당하며 군데군데 옷 사이로 드러난 신체 역시 당당하고 강인한 느낌을 준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에서 발목 부분까지 U자형의 주름을 이루면서 내려오고 있으며, 다리 사이에는 바지 자락이 표현되어 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는 배(舟) 모양으로 불상과 같은 돌로 만들었는데, 파손이 심해서 세부표현을 확인하기 어렵다.

왼쪽 협시보살도 왼쪽 어깨에서부터 오른쪽 허리까지 부러진 것을 복원하여 놓은 것이다.

얼굴은 본존과 같은 형태지만 훨씬 부드러우며, 허리를 왼쪽으로 약간 틀어 몸의 중심을 본존쪽으로 두고 있다.

옷은 밑부분이 넓게 퍼져 무겁고 둔중한 느낌이 든다.

오른쪽 협시보살 역시 모든 면에서 왼쪽과 같으나 윤곽이 둥글고 앳된 모습이 다르다.

당당한 신체표현, 강인한 신체묘사, 유려한 각선 등에서 상당한 기량을 보이고 있지만,

평판적인 신체묘사와 형식화된 조각기법으로 볼 때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문화재자료 제148호 청양삼층석탑, 보물 제197호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

충남 청양

2010. 0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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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56호 정산 남천리석탑


시도유형문화재 제56호 정산남천리석탑 (定山南泉里石塔)



‘탑골동’또는 ‘절골동’이라 불리우는 남천리 산골짜기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자그만 절터가 하나 있다.

절터에서 조금 떨어진 산 기슭에 이르면 아담한 모습의 이 탑이 보이는데, 2층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은 네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본떠 새겼고, 위층기단은 모서리에만 조각을 해 두었다.

탑신부의 각층 몸돌을 덮고있는 지붕돌은 곡선을 이루는 낙수면과 수평을 유지하는 처마의 조화가 아름답다.

네 귀퉁이에서의 들어올림도 가벼우며, 밑면의 받침은 1층에서부터 5단·4단·3단으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 위로 세 조각으로 깨어진 머리장식이 위태롭게 놓여있다.

전체적으로 우아한 균형미가 잘 나타난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문화재청)











시도유형문화재 제56호 정산 남천리석탑

2010. 0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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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147호 계봉사 오층석탑


문화재자료 제147호 계봉사오층석탑 (鷄鳳寺五層石塔)



계봉사의 정원 가운데 서 있는 5층 석탑이다.

계봉사는 백제 성왕 때 지었다고도 하며, 통일신라 문성왕 때 지어졌다고 하나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 헌종 때 불에 타 버린 것을, 옛이름을 따서 작은 규모로 새로이 짓고 정원을 꾸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5층 석탑과 물을 받는 돌구유만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위층 기단의 앞면에는 탑의 이름을 새기고, 탑신의 각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 떠 새겼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1층부터 4층까지 4단이다가 5층에 이르러 3단으로 줄었다.

지붕돌의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높게 치켜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장식) 과 앙화(仰花:활짝 핀 연꽃무늬 장식) 등의 머리장식을 갖추고 있다.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지붕돌 받침이 4∼3단으로 줄어드는 양식상의 변화를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 작품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











문화재자료 제147호 계봉사 오층석탑

2010. 0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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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8호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


보물 제18호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 (靑陽 西亭里 九層石塔)



공주에서 청양쪽으로 23㎞ 떨어진 벌판 가운데에 서 있는 탑으로, 

부근에 고려시대 백곡사(白谷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주위에 기와조각 등이 흩어져 있을 뿐 다른 유물들은 찾아볼 수 없다.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9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眼象)을 돌려 새겼는데, 바닥선이 꽃모양으로 솟아올라 있어 고려시대의 양식상 특징을 드러낸다. 

윗층 기단에는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그 위로 알맞은 두께의 돌을 덮어 안정된 모양새를 띠고 있다. 

탑신 1층이 큰 점이 특징적인데, 2층부터는 높이가 뚜렷하게 줄어들지만 넓이는 크게 좁아지지 않아 우아한 느낌이다. 

지붕돌은 아랫면에 1층은 5단, 나머지 층은 3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네 귀퉁이가 약간씩 치켜올라가 있다.

전체적으로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석탑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9층이나 되는 층수로 인해 형태가 매우 높아져 안정감이 부족하다. 

각 부분의 세부적 조각양식이나 기단의 안상을 새긴 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보물 제18호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

충남 청양

2009. 08.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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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 칠갑산 장곡사


충남 청양 칠갑산 장곡사



장곡사 가는 길




칠갑산 장곡사







- 보물 제181호 청양 장곡사 하 대웅전 (靑陽 長谷寺 下 大雄殿) -


장곡사는 칠갑산에 있는 절로 신라 후기 보조국사가 세웠다고 한다.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으나 조선 정조 1년(1777) 고쳐 짓고 고종 3년(1866)과 1906년, 1960년에 크게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은 지형을 따라 위아래에 2개의 대웅전이 있는 특이한 배치를 하고 있다. 

상·하 대웅전은 서로 엇갈리게 배치되었는데, 하대웅전은 상대웅전보다 훨씬 낮은 곳에 동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대웅전은 조선 중기에 지은 것으로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소박한 맞배지붕에 화려한 다포 양식을 가미한 것은 보기 드문 예이다.

건물 안쪽에는 상대웅전이 전돌을 깐 것과 달리 마루를 깔았고 불단에는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제337호)을 모시고 있는데, 

이는 고려 후기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재청)












- 보물 제337호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靑陽 長谷寺 金銅藥師如來坐像) -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靑陽 長谷寺 金銅藥師如來坐像)은 충청남도 청양의 장곡사에 있는 상·하 2채의 대웅전 가운데 하대웅전에 모신 불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분에 있는 상투 모양의 넙적한 머리(육계)는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갸름한 타원형의 얼굴은 단정하고 우아하지만 통일신라시대 불상에서 보이던 미소는 사라지고 근엄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두터워 보이며 어깨는 상대적으로 왜소하게 보인다. 

옷자락에는 굵은 주름이 듬성듬성 새겨져 있고, 배에 있는 띠매듭은 율동감있게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에는 약그릇을 들고 있으며, 왼손은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는데 손톱 모양까지 세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불상의 신체는 늘씬하게 균형이 잡혀 있으며 넓은 무릎으로 인해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있다.

1959년 불상 밑바닥을 열고 조사하다가 불상을 만들게 된 이유와 연도를 적은 발원문이 발견되어, 

고려 충목왕 2년(1346)에 만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고려시대 불상임이 확인되었으며 충청도 지역에서 유행하던 고려 후기 불상양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문화재청)




- 보물 제162호 청양 장곡사 상 대웅전 (靑陽 長谷寺 上 大雄殿) -


장곡사는 칠갑산에 있는 사찰로 신라 후기 보조국사가 세웠다고 한다.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으나 조선 정조 1년(1777) 고쳐 짓고 고종 3년(1866)과 1906년, 1960년에 크게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은 지형을 따라 위아래에 2개의 대웅전이 있는 특이한 배치를 하고 있다. 

상·하 대웅전은 서로 엇갈리게 배치되었는데, 상대웅전은 하대웅전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상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특이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 

건물 안쪽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으며, 그 중에는 통일신라 때 것으로 보이는 잎이 8개인 연꽃무늬를 새긴 것도 섞여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재들의 짜임수법이 특이하여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청양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국보 제58호)와 청양 장곡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보물 제174호) 등 귀중한 문화재를 보관하고 있다.

(문화재청)















- 국보 제58호 청양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 (靑陽 長谷寺 鐵造藥師如來坐像 및 石造臺座) -


충청남도 청양군 칠갑산에 자리잡은 장곡사 상대웅전(보물 제162호) 안에 모셔져 있는 철불좌상으로, 

나무로 된 광배(光背)를 배경으로 거대한 사각형의 돌로 만든 대좌(臺座) 위에 높직하게 앉아 있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아담하게 표현되어 있고, 얼굴은 둥글고 단아한 모습이다. 

신체는 건장하고 당당한 편이지만 양감이 풍부하지 않고 탄력적인 부피감도 줄어 들어 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오른손은 손끝이 땅을 향하도록 하고 있으며, 무릎 위에 놓인 왼손에는 약항아리가 얹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없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만을 감싼 옷은 느슨하게 처리되었고, 옷주름 또한 드문드문 표현되었다.

4각형의 대좌는 불상보다 훨씬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중·하 3단 형태의 이 대좌는 하대가 넓고 높은 반면에 중대와 상대는 상대적으로 낮고 작은 편이다. 

바닥돌은 매우 넓은 편인데, 사방 모서리에 기둥을 세운 흔적이 있어 불상을 모시던 공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대에는 엎어 놓은 연꽃무늬를 새기고 각 모서리에는 귀꽃을 큼직하게 조각하였다. 

중대의 각면에는 큼직한 눈모양의 안상(眼象)을 새기고, 상대에는 활짝 핀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광배는 원래 돌로 되었을 것이나 파손되어 조선시대에 나무광배로 대체한 것 같다. 

광배 중심부에는 꽃무늬, 주변에는 불꽃무늬를 새기고 있어 신라말과 고려초에 유행하던 광배를 모방하여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이 불상은 특이한 탑 모양의 대좌와 감실형의 구조, 그리고 단아한 철불양식을 보여주는 9세기 말 양식을 계승한 10세기 초의 뛰어난 불상으로 평가된다.

(문화재청)









- 보물 제174호 청양 장곡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 (靑陽 長谷寺 鐵造毘盧遮那佛坐像 및 石造臺座) -


충청남도 청양 칠갑산에 자리잡은 장곡사의 상대웅전 안에 모셔져 있는 불상으로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삼각형에 가까운 작은 얼굴에는 긴 눈썹과 가는 눈, 작은 코와 입 등이 표현되어 다소 세속화된 모습이다. 

어깨는 넓지만 볼륨은 약화되었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만을 감싸고 있는데, 드러나 있는 오른쪽 어깨가 너무 소홀하게 처리된 느낌이다.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데 이는 비로자나불만이 취하는 독특한 손모양으로 부처와 중생이 하나라는 의미를 지닌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원래의 것이 아니라 석등 대좌를 가져다 놓은 것으로 불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어색한 모습이다. 

부처의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光背)는 나무로 만들었는데, 머리광배·몸광배 안에 꽃모양의 장식이 채색되어 있다. 

광배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가 채색되어 있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옆에 놓여 있는 청양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국보 제58호)의 광배와 같은 양식이다.

전체적으로 평범한 얼굴, 빈약한 체형, 허술한 오른쪽 어깨의 처리 등에서 9세기 중엽 비로자나불 양식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으며, 

괴산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433호)과 거의 같은 유형의 작품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충남 청양 칠갑산 장곡사

2009. 0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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