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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충주'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9.03.18 보물 제1527호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
  2. 2019.03.13 시도유형문화재 제225호 충주 추평리 삼층석탑
  3. 2019.03.12 시도유형문화재 제8호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제271호 충주 창동리 석조약사여래입상
  4. 2019.03.10 국보 제6호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보물 제1527호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


보물 제1527호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 (忠州 白雲庵 鐵造如來坐像)





충주시에 소재한 백운암은 1886년 무당의 신분으로 진령군이라는 작호를 받아 여자 대감이 된 윤씨에 의하여 창건된 사찰로 전해진다.

이 사찰에서 주존불로 봉안하고 있는 이 철불은 원래 이곳에서 전하던 불상은 아닌데,

인근에 고려시대 대규모 사지인 억정사지(億政寺址)가 있어서 아마도 이곳에서 옮겨온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충주는 철의 산지로 백운암의 철조여래좌상 이외에도 대원사(大圓寺)의 충주철불좌상(보물 제 98호)과 단호사(丹湖寺)의 철불좌상(보물 제 512호)이

전하고 있어서, 이 세 구의 철불은 충주 지방의 3대 철불로 알려져 있다.

백운암의 철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8세기 석굴암 본존상 이래로 유행한 편단우견(偏袒右肩)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여래 좌상으로,

규모는 높이 87㎝정도의 크지 않은 상이다.

얼굴은 몸 전체에 비해 작은 편이나 이목구비의 표현이 뚜렷하고 근엄한 표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보이고 어깨가 넓으며 가슴이 융기되었고,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다리의 폭이 넓어서 당당한 자세를 보인다.

몸의 표현이 전체적으로 양감있게 조각되었고 대의 자락에서 부분적으로 번파식 옷주름을 볼 수 있어서

이 불상이 통일신라 8세기 양식을 반영하고 있는 상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양감이 8세기 불상만큼 풍부한 것은 아니며 항마촉지인의 수인(手印)도 전형적인 형식이 아니어서 8세기보다는 시대가 내려가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성 시기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정도로 추정된다.

이 철조여래좌상은 비교적 통일신라 불상 양식의 특징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 충주 지역 철불 중에서는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상으로 추정된다.

또한 상호도 원만하며 전체적으로 크게 손상된 부분이 없고 조각 양식도 좋은 편으로, 통일신라시대 이래 철불 연구에 매우 중요한 상이다.

(문화재청)








보물 제1527호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

2010.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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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225호 충주 추평리 삼층석탑


시도유형문화재 제225호 충주 추평리 삼층석탑 (忠州 楸坪里 三層石塔)



추평리(楸坪里) 탑평(塔坪) 마을에 위치하며 탑 주변의 경작지와 인근 민가일대까지 주초석과 많은 기와들이 나오고 있다.

또한 추평리사지의 암자로 추정되는 뒤쪽 8부 능선상에도 많은 기와가 확인되고 있다.

사명(寺名)은 밝혀진 바 없으나 자기(磁器)와 고려시대 와편(瓦片)들이 상당량 출토되고 있어 고려시대 전반기인 11세기경 축조된 탑으로 추정된다.

이 주변 사지(寺址)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엄정사(嚴政寺)’일 가능성이 크나 현재로선 확인할 수는 없다.

절터는 3층석탑이 있는 주변과 인근 민가일대까지 포함되는 약 3,000평 규모로 추정된다.

단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갖춘 ‘일반형석탑(一般型石塔)’으로 2매로 조립된 갑석(甲石) 위에 초층 탑신이 안정감있게 올려지고

탑신의 양쪽에 우주(隅柱)가 정연하게 모각(模刻)되었다.

낙수면은 급하며 옥개(屋蓋)에는 전각(轉角)의 반전이 있으며 탑신괴임은 생략되었다.

옥개의 양쪽 끝에는 풍경원공의 흔적이 또렷하고 층급받침은 모두 4단이다.

상륜부에는 복발(覆鉢)로 보이는 부재(部材)가 남아 있다.

탑은 단층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갖춘 일반형의 석탑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3층까지 남아 있다.

탑 주변에서 토기편 외에 수막새기와, 백자발 등 다량의 유물이 확인되고 있다.

충주 추평리삼층석탑은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고려시대에 건조된 일반형 석탑으로 주변일대에서 수습되는 자기(磁器)와 와편(瓦片)으로 보아

고려조에 번창했던 사찰(寺刹)로 추정되며 탑신(塔身)의 우주(隅柱)표현, 전각(轉角)의 반전으로 보아 신라시대 양식을 이어 받으면서

다소 변형된 고려초기 탑의 양식을 고찰할 수 있는 석탑으로 보존가치가 높다.

(문화재청)

















시도유형문화재 제225호 충주 추평리 삼층석탑

2010.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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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8호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제271호 충주 창동리 석조약사여래입상


시도유형문화재 제8호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忠州 創洞里 五層石塔), 

시도유형문화재 제271호 충주 창동리 석조약사여래입상 (忠州 倉洞里 石造藥師如來立像)






- 시도유형문화재 제8호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


중원탑평리칠층석탑(국보 제6호)에서 남쪽으로 2㎞쯤 되는 지점에 자리한 5층 석탑으로,

원래는 민가의 뒷뜰에 있던 것을 100여m 남쪽으로 옮겨 복원해 놓은 것이다.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며, 현재 맨 위의 머리장식이 없어진 채 그 받침돌만 남아 있다.

위로 오를수록 조금씩 규모가 줄어드는 탑신의 각 몸돌에는 네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지붕돌과 몸돌은 각기 다른 돌로 조성되어 있는데 5층에서만은 한 돌로 되어 있어 흥미롭다.

지붕은 네 귀퉁이가 부드럽게 치켜올라갔고, 위로 올라갈수록 밑면의 받침수가 줄어드는 특징을 보인다.

이 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단 위에 두툼한 괴임돌을 끼워 탑신의 1층 몸돌을 받치고 있는 것과 각 층 지붕돌 위에도 비슷한 괴임을 표현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장식이 거의 없는 탑신에 작은 변화를 주고 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탑은, 섬세한 조각은 볼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 구성이 간략화되고 대범하여 고려인의 기상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문화재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271호 충주 창동리 석조약사여래입상 -



화강암 판석 1매에 보주형 광배와 불신을 부조한 불상으로소발위에 두터운 육계가 표현되었으며 눈썹은 반원형이며 얼굴은 통통하게 살이 쪘다.

양귀는 어깨까지 닿으며 삼도가 표현되었다.

법의는 통견이며 왼손을 가슴에 대고 그 위에 약합을 쥐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위까지 올려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고 있다.

대좌는 장방형 판석에 연화문을 새기고 불상을 끼우도록 되어 있으나 원래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시도유형문화재 제8호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시도유형문화재 제271호 충주 창동리 석조약사여래입상

2010.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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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6호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국보 제6호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忠州 塔坪里 七層石塔)




남한강의 아름다운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당시에 세워진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며,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해서 중앙탑(中央塔)이라고도 부르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높은 탑신을 받치기 위해 넓게 시작되는 기단은 각 면마다 여러 개의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 역시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 끝이 경쾌하게 치켜올려 있어 자칫 무겁게 보일 수 있는 탑에 활기를 주고 있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탑 정상의 머리장식은 보통 하나의 받침돌 위에 머리장식이 얹어지는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이중으로 포개어진 똑같은 모양의 받침돌이 머리장식을 받쳐주고 있다.

기단에서의 기둥조각 배치,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의 짜임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8세기 후반에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1917년 탑을 보수할 때 6층 몸돌과 기단 밑에서 사리장치와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특히 6층 몸돌에서 발견된 거울이 고려시대의 것으로 밝혀져 탑 조성 이후 고려시대에 와서 2차 봉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커서 웅장하기는 하나 너비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듯 하여 안정감은 덜하며,

세부수법이 약화되고 있어, 일제당시 보수하면서 일부 변형되었다는 논란이 있다.

(문화재청)



























국보 제6호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2010.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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